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문재 Feb 22. 2016

노동자들을 울린 신부(神父)

노동자 권익 신장을 위한 노력

레오 13세의‘노동헌장’ 낳아

종교와 정치권이 서로 협력해 

워킹 푸어 줄이려고 노력해야


영국 런던의 부두 노동자들은 1890년 5월 1일 메이데이(May Day)를 맞아 기념 행진을 벌였다. 노동자들은 두 개의 초상화를 들고 행진을 이어갔다. 둘 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하나는 칼 마르크스였다. 노동자들이 마르크스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건 당연했다.


다른 한 사람은 헨리 에드워드 매닝(Henry Edward Manning) 추기경이었다. 이 또한 당연한 결정이었다. 매닝은 노동자들의 아버지나 다름 없었다. 노동자들은초상화를 통해 매닝에게 애정과 존경을 헌정(獻呈)했다.  


매닝은 부두 노동자들의 파업을 계기로 이들의 권익을 보호하기위해 애썼다. 부두 노동자들은 1889년 8월 14일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이 파업은 영국, 나아가 세계 노동운동사에서 한 획을 긋는다. 임시직 미숙련 저임 노동자들이 공개적으로 단결권을 행사한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직능조합의 권익 요구는 무시할 수 없었다. 비슷한 직능을 가진 숙련 노동자들은 잘 뭉쳤고, 무시할 수 없는힘을 과시했다. 하지만 미숙련 노동자들은 달랐다. 경제적 약자로서 비참한 삶을 이어갔다. 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은 신발 살 돈이 없어서 맨 발로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일을 하지 못하면 그날은 하루 종일 굶어야 했다. 


부두 노동자들은 시간 당 6페니의 임금을 요구했다. 그 당시에는 5 페니 정도면 가까스로 허기를 채울 정도의 음식을 살 수 있었다. 따라서 이들은 그저 끼니를 때울 수 있을 정도의 임금을 요구한 셈이다. 


이들은 여론의 지지까지 얻었다. 요구 조건 자체가 소박한 데다 대규모 시위였지만 평화롭게 진행됐기 때문이다. 매닝이 개입하자 협상은 술술 풀려나갔다. 노동자는 물론 사용주들도 매닝을 신뢰하고, 존경했다. 


매닝의 중재에 힘입어 임금협상은 이내 타결됐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했다. 노동자들은 감사 표시로 160파운드를 모아 매닝에게 전달했다. 매닝은 이 돈을 전액 의료시설에 기부했다. 노동자들은 매닝의 헌신적인 사랑에 눈물을 흘렸다. 


매닝을 비롯해 상당수 사제(司祭)들은 19세기 후반부터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은 ‘사회정의’를 강조하며 개혁을 요구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정부와 자본가를 압박했다. 영국은 물론 독일, 미국 등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신부들이 노동자의권익 신장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독일 마인츠의 케틀러(Kettler)주교는 노동자들의 권익 신장을 위해 적극적인 입법을 주문했다. 그는 적정 임금, 노동시간 축소, 휴일 보장, 어린이노동 금지 등을 법으로 명문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제임스 기본스(JamesGibbons) 추기경은 가톨릭 신도들의 적극적인 노동조합 활동을 지원했다. 그는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은 노동자들의 당연한 권리”라며 “탐욕, 억압, 부패에 대한대응 방법을 찾는 것은 모든 이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사제들의 이런 노력은 가톨릭의 공식 입장으로 굳어진다. 교황 레오 13세는 1891년 사제들의 건의 내용을 바탕으로 ‘노동헌장(Rerum Novarum)’이라는이름의 칙서를 발표했다. 이 칙서는 직역하면 ‘새로운 상황에대하여’로 풀이할 수 있지만 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주요 내용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노동헌장’이라고 부른다. 


노동헌장은 ‘노동자들이 검소하면서도 예의 바른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을 정도의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했다. 레오 13세는 공정한 임금 수준을 ‘노동자들이 가족을 부양하고, 약간의 저축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임금’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100여 년이 흘렀지만 레오 13세가 권고하는 수준의 생활을누리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부지기수다. 이들은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일하지만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른바 비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워킹 푸어(working poor)’다.  


레오 13세는“정부는 각종 권리 보호를 통해 사회 정의를 강화해야 하고, 교회는 올바른 사회 원칙을 가르치는 동시에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사회적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주장했다. 


레오 13세의가르침을 실천하려면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세계화, 신(新)자유주의 등 우리가 극복하기 힘든 구조적 압력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이런 압력을 아예 노력조차 포기하는 핑계거리로 삼아서는 곤란하다. 


레오 13세의 말대로 정부는 정부 나름대로, 종교는 종교 나름대로 노력해야한다. 지도자들이 이런 노력을 포기한다면 ‘나쁜 종교인’, ‘나쁜 정치인’이라는 딱지를 피할 수 없다.  


참고문헌 

1)     Kahan, Alan. 2010. MIND vs. MONEY: The Warbetween Intellectuals and Capitalism. New Brunswick: TransactionPublishers.  

2)     Rerum Novarum - WIKIPEDIA(The FreeEncyclopedia)

3)     Henry Edward Manning - WIKIPEDIA(The FreeEncyclopedia)

작가의 이전글 세금 없는 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