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국가는 약탈로 재정 확보
전리품이나 노예로 경제 운영
국민은 좋아도 지속성은 없어
재정 안정 위해 증세는 불가피
BC 483년 아테네 시민들은 횡재를 만났다. 아테네에서 동남쪽으로약 60km 떨어진 로리엄(Laurium)이란 곳에서 은광(銀鑛)이 발견됐다. 이곳은 아테네 국영 광산이었다. 아테네 정부는 은(銀)을 채굴하자마자 은화로 만들어 시민들에게 뿌렸다.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재정 정책은 전리품 분배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전쟁을 통해 약탈한 금이나 은을 녹여 화폐로 만든 후 전비(戰費)로 충당하거나 다른 공공정책 재원으로 사용했다.
이렇게 만든 금화나 은화를 일반 시민들에게도 나눠줬다. 보통 배심원으로 재판에 참여하거나 민회(民會)에 참석하면 일당을 지급했다. 하지만 로리엄 은광 발견처럼 예상 밖의 수입이 생기면 모든 시민들을 대상으로 고루돈을 나눠주기도 했다.
전리품은 화수분이 아니다. 샘물처럼 계속 쏟아질 수는 없다. 그래서 광산 개발은 필수였다. 광산에서 일할 노동력은 전쟁을 통해 조달했다. 레바논의 시돈이나 티레의 시민들을 전쟁 포로로 잡아 강제 노동에 동원했다. 로리엄 광산의 경우 1만~2만명의 노예를 투입했다. 이에 따라 아테네의 금-은 생산체제를 ‘군(軍)-주화(鑄貨)-노예 복합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알렉산더 대왕은 동방원정에 착수하기 앞서 돈부터 빌려야했다. 알렉산더는 용병을 동원했다. 용병은 모두 12만 명으로 이들의 하루 임금을 지급하려면 5,000kg의 은(銀)이 필요했다. 이런 막대한 전비는 모두 약탈로 충당했지만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는 차입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약탈을 통해 전비를 마련한 것은 세금에 대한 부정적 인식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은 세금을 폭정(暴政)의 상징으로 간주했다. 세금은 피정복국가의 주민들만 부담했다. 이런 관행은 페르시아도 마찬가지였다. 페르시아 백성들도 왕에게 직접 세금을 바치지는 않았다. 그리스처럼 식민지 백성들만 세금을 냈다.
이런 전통은 로마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로마인들은 세금을 부담하지 않는 것은 물론 식민지 주민들로부터 걷은 세금에 대한 수익권까지 누렸다. 그저 백성들의 환심을 사는 데만 골몰하는 것을 가리키는 ‘빵과 서커스(bread and circus)’라는 표현도 이때 등장했다.
이게 약탈 경제의 운영 방식이다. 남의 것을 빼앗아 국가 통치 재원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굳이 제 것을 쓸 이유가 없다. 하지만 지속 가능성은 없다.
로마의 국경이 넓어지자 상비군 규모도 확대됐다. 당연히 군(軍)을 유지하고, 충성을 담보키 위한 비용 부담도 크게 늘어났다. 증세는 불가피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3세기 말 재정 확충을 위해 세제 개혁을단행했다. 이탈리아에 땅을 갖고 있는 지주를 대상으로 토지세를 부과하는 한편 자금 거래에 대해서도 세금을징수했다.
증세 부담은 원로원 의원들에게 집중됐다. 각 지방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원로원 의원들이 주로 세금을 부담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에 이어 왕위에 오른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세금을 더욱 늘렸다. 지속 가능한 체제를 만들기 위해서다.
올 1분기국세 수입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조원 가까이 감소했다. 복지확충을 위해 세수가 늘어나도 시원치 않을 판에 오히려 줄어들었으니 걱정이 크다. 이대로 가면 올해 세수부족 금액이 36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는 일단 지하경제 양성화, 세출 구조조정 등을 통해 재정 적자 규모를 최소화해 나갈 계획이다. 아울러벌과금 미납액을 줄이기 위한 방안까지 동원되고 있다.
눈물겨운 노력이다. 하지만정도(正道)가 아닐뿐더러 재정 안정에 큰도움이 되지도 못할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경제정책은 요술방망이가 아니다. 획기적인 노력을 기울인다고 세수가 크게 늘어나리라고 기대키는 힘들다.
오히려 이 과정에서 재정 건전성은 그만큼 훼손되고, 그에 따른 부담은 후손들에게 넘어간다. 한국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의경우 재정 건전성 악화는 재정의 경기조절 능력 약화로 이어질 뿐 아니라 심각한 경제불안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는 또한 정의롭지도 못한 짓이다. 정의(正義)는 여러가지로 정의(定義)될 수 있다. ‘자기의 밥 값을 남에게 전가하지 않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증세를 외면함으로써 자신의 밥 값을 아들이나 손자에게 미루는 것은 불의(不義)다.
세금 없는 나라는 유토피아일 뿐이다. 이런 진리를 외면하면 우리가 감내해야 할 고통과 파열음도 더욱 깊어질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