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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재 Feb 22. 2016

계약 노예의 절규

계약에 없는 조건 강요하는

경제적 약자들에 대한 횡포 

용서키 힘든 폭력이자 착취

정부의 엄정한 관리가 필수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전부터 어업을 주력산업으로 삼았다. 매사추세츠 등 미국북동부 지역과 캐나다 뉴펀들랜드 사이의 바다는 그야말로 ‘물 반(半), 고기반(半)’이었다. 대구, 고등어, 청어, 농어 등이 넘쳐났다. 


17세기 초에는 이미 매사추세츠에만 12개의 어업 전진 기지가 들어섰다. 식민지 어부들이 고기잡이로 큰 돈을 벌자 영국 정부도 개입했다. 황금어장에 대한 권리를 놓고 영국 정부와 식민지가 알력을 빚었다. 어로권에 대한 갈등도 미국의 독립전쟁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 


이미 17세기 중반에 대규모 선단을 소유한 기업 형태의 원양어업이 등장했다. 매사추세츠를 비롯한 뉴잉글랜드 지역은 400여 척의 어선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들은 주로 고기를 말리거나 훈제한 후 판매했다. 냉장 기술이 일반화된 것은 1880년대부터다. 그 이전에는 고기를 잡으면 소금에 절이거나 훈제 또는 건조 처리한 후 내다 팔았다. 염장(鹽藏)은 배 위에서도가능했지만 소금 비용 때문에 훈제나 건조 방식을 선호했다. 


미국 수산물 업체들은 시장을 세 개로 나눴다. 보존 상태가 좋은 고기는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으로 수출했다. 크기가 작고, 보존 상태가 떨어지는 것은 카나리아나 자메이카 등지에 내다팔았다. 


예나 지금이나 자본은 허튼 법이 없다. 수산물 업체들은 머리나 꼬리 등이 잘려나간 생선 조각까지 건조한 후 판매했다.고객은 주로 아이티 등지의 플랜테이션(plantation) 농장주였다. 


이런 생선 조각은 노예들을 먹일 생선 수프를 만드는데 사용됐다. 생선 수프는 노예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가능한 한 적은 비용을 들이면서 노동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프랑스 식민지 생도맹그(옛아이티)는 자메이카와 함께 대표적인 사탕수수 생산지다. 이들 지역은 플랜테이션 농업을 통해 커피, 코코아, 면화 등을 생산했지만 경제성을 따진다면 사탕수수가 최고였다. 


프랑스는 1730년대부터 건축기사들을 동원해 생도맹그에 관개시설을 확충한 후 사탕수수 재배에 박차를 가했다. 사탕수수 재배는 대표적인 노동집약적 산업이다. 섭씨 30도를웃도는 날씨에 사탕수수를 베어내려면 보통 체력으로는 감당키 어려웠다. 필요한 노동력은 노예를 통해 조달했다. 


처음에는 굳이 돈을 주고 노예를 사들일 필요도 없었다. 원주민을 노예로 삼았다. 하지만 노동조건이 워낙 열악한 데다 전염병까지 번지면서 줄줄이 쓰러지고 말았다. 그러자 아프리카 서부지역의 흑인들로 눈을 돌렸다. 


사탕수수 수확량은 노동력 투입량에 비례한다. 당연히 최대한 많은 노예들을 투입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노예가 늘어났다. 흑인 노예와농장주의 비율이 10:1을 훌쩍 넘어섰다. 


반항 의지를 꺾어놓기 위해 무자비한 관리 방법이 동원됐다. 매질은 기본이었다. 공포감을 심어주기 위해 공개적인 화형이나 거세를 밥 먹듯 되풀이했다. 노예들로서는 차라리 죽는 게 더 편안했다. 여성노예들은 아이를 낳자마자 목을 졸라 죽였다. 생선 찌꺼기로 만든 수프가 자신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豪奢)라면 그런 삶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는것 자체가 죄악일지도 모른다.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은 무서울 것도 없다. 흑인 노예들은 하나 둘씩 플랜테이션을 탈출해 반란세력을 형성한다. 이들은 마침내 무장 봉기를 통해 프랑스군을 몰아냈다. 노예들은 1804년사상 최초로 반란에 성공한 후 독립 국가를 선포한다. 이게 바로 ‘아이티(Haiti) 공화국’이다.   


가맹점이나 대리점 등 경제적 약자에 대한 대기업의 횡포가 거센 반발에 부딪쳤다. 형식상으로는 갑과 을의 계약이지만 실제 내용을 살펴보면 노예 신분이나 다름없다. ‘계약 노예’로서의 삶을 강요한 셈이다. 이들이 공개적으로 피눈물을 쏟아내는 것은 그만큼 갈 데까지 갔다는 뜻이다. 


누구나 계약을 맺고 해지할 수 있는 만큼 선택은 개인의 몫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계약 자유의 원칙만 따지면 경제적 약자에 대한 착취가 일상화되기 때문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다. 더욱이 계약 내용대로 권리와 의무를 이행하는 게 정상인데 계약에도 없는 ‘떡값’이나 ‘회식비’까지 요구하는것으로 드러났다. 심각한 계약 위반이자 일방적 폭력이다. 


계약 노예의 반란에 아낌 없는 박수를 보낸다. 이들의 반란이 성공해야 선진사회라고 할 수 있다. 존 로크는 이미 300여 년 전 “인간의 편파성과 폭력을 억제하기 위해 정부를 세우는것”이라고 가르쳤다. 정부의 엄정한 관리를 기대한다. 


참고문헌

1)   Hobhouse,Henry. 2005. Seeds of Wealth. Emeryville: Shoemaker & Hoard. 

2)   존 로크 지음. 강정인, 문지영 옮김. 2013.통치론. 까치.   

3)   HaitianRevolution -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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