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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재 Feb 22. 2016

프란치스코와 호모보노스

청빈은 성직자들의 실천 덕목

모든 사람들이 따를 수는 없어

물질적인 성공을 추구하더라도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게 중요


중세는 암흑의 시대였다.신(神)의 이름으로 폭력과 불합리가 춤을 췄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던 시절이다. 지배층을 제외하곤 대부분 팍팍한 삶을 이어갔다. 


가장 큰 원인은 교회에서 찾을 수 있다. 교회는 부(富)와 상거래를 죄악시했다. 성경 곳곳에서 부자에 대한 섬뜩한 경고를 찾아볼 수 있다. 야고보서 5장이 대표적이다. “들어라! 부자들아. 너희에게 닥칠 고생으로 울고 통곡하라. 너희의 재물은 썩었고, 너희의 좋은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의 금(金)과 은(銀)도 녹이 슬었다.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어 치우리라.”


중세는 그리스 로마 시대와 마찬가지로 농업을 장려했지만 상거래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드러냈다. 식량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상거래는 그렇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성 (聖) 암브로시우스는“물고기를 잡기 위해 바다를 사용하는 것은 괜찮지만 무역을 위해 바다를 이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나님이 무역에 이용하라고 바다를 만든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더욱이 3세기부터시작된 ‘위대한 금욕(the Great Renunciation)’ 운동은 금욕과 청빈을 중요한 가치로 제시했다. 성직자들이 잇달아 ‘청빈서약’을 통해 자신의 재산을 포기했다. 이는 사유재산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줬다. 성(聖) 피터 다미안은 “돈은 모든 악의 뿌리”라고 외치고 다녔다. 


부(富)에 대한 인간의 열망은 교회도 꺾을 수 없었다. 성직자들이 앞다퉈 돈을 죄악시하는 발언을 쏟아냈다는 것 자체가 이를 방증한다. 


새 교황의 이름 프란치스코는 중세 이탈리아의 성인(聖人)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에서 따온 것이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는 원래 이름이 ‘지오반니 디 베르나르도네’다. 지오반니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 ‘피에트로 디 베르나르도네’는 프랑스에 머물고 있다. 피에트로는 프랑스와의 무역으로 돈을 쏠쏠히만졌다. 피에트로는 아시시로 돌아오자마자 아들의 이름을 프란치스코로 바꾼다. 프란치스코의 원뜻은 프랑스인(Frenchman)이다. 프랑스와의 무역이 더욱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셈이다. 


프란치스코는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렸다. 집안의 돈을 빼내 어려운 이들을 돕자 아버지는 처음에는 달래보다가 나중에는 폭력까지 행사했다. 프란치스코는 마침내 아버지와의 의절을 선언했다. 그는 평생 나환자를비롯한 소외된 이들을 돌보며 청빈을 실천했다. 


그는 1226년 10월3일 저녁 찬송가를 부르다가 눈을 감는다. 교황 그레고리 4세는 1228년 프란치스코를 성인으로 시성했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조치다. 


청빈을 강조하다 보니 상인을 죄인처럼 취급했다. 예외 없는 법칙이 없는 것처럼 여기에도 예외는 있다. 성(聖) 호모보노스(Homobonus)가 그렇다. 라틴어 호모보노스를 우리 말로 풀이하면 ‘착한(bonus) 사람(homo)’이다.  


그는 명실상부한 삶을 살았다. 호모보노스는 정직한 상인이었다. 그는 상업을 자신의 소명(召命)으로 여겼다. 호모보노스는 돈을 버는 즉시 어려운 이들을 위해 베풀었다. 그는 “하나님은 내가 가난한 이들을 도울수 있도록 비즈니스를 허락하셨다”고 말할 정도였다.   


장사를 하면서 상대를 속이지 않고, 번 돈은 아낌없이 이웃에게 베풀었으니 청부(淸富)를 실천한 셈이다.  

호모보노스가 1197년 11월 13일 타계하자 교황 이노센트 3세는 불과 4개월 후 그를 성인으로 시성했다. 교황은 그를 ‘어려운 이들의 아버지’, ‘고통 받는 이들의 위로자’라고 불렀다. 그를 서둘러 성인으로 추대한 데는 적극적인 자선행위가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교회는 여전히 상업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단지 호모보노스의 선행을 높이 샀을 뿐이다.  


청빈은 성직자들로서는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세속(世俗)은 다르다. 청빈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모두가 청빈한 삶을 이어간다면 장애인 등 취약 계층을 도울 수 있는 물적 기반도 마련할 수 없다. 


이건 엄연한 현실이다. 모든 사람들이 성직자처럼 살 수는 없다. 16세기 스위스의 종교개혁가 울리히 츠빙글리는“가급적 하나님의 법(divine law)을 따르는 게 좋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 수는 없는 만큼 인간의 법(human law)을 만들어 따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도 있어야 하지만 호모보노스도 필요하다. 성(聖) 호모보노스조각상은 미국 기업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호모보노스가 기업인들의 수호성인이기 때문이다. 호모보노스처럼 정직하게 돈을 벌되 적극적인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천국은 지상에서도 실현될 수있다. 


참고 문헌

1)     Kahan, Alan. 2010. MIND vs. MONEY: The Warbetween Intellectuals and Capitalism. New Brunswick: TransactionPublishers.  

2)     Saint Homobonus,   WIKIPEDIA(The Free Encyclopedia)

3)     Saint Francis of Assisi, WIKIPEDIA(The FreeEncyclo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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