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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재 Feb 15. 2016

동전의 실종

10원짜리 동전의 현물가치 

액면가치보다 훨씬 더 높아

결제 기능을 잃어버렸다면 

퇴장까지 심각히 고민해야 


부자는 대체로 통이 크다. 고대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Croesus)도 그랬다. 리디아는 현재의 터키에 자리잡은 부국(富國)이었다. 크로이소스는 막대한 재산을 자랑했다. 아직도 영어에는 ‘크로이소스 같은 부자(as rich as Croesus)’라는 표현이남아 있을 정도다. 


크로이소스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복 전쟁에 매달렸다. 엄청난 재산을 바탕으로 많은 용병을 거느렸다. 에베소(Ephesus)를 비롯해 소아시아(현재의 터키)에 있는 그리스 도시들이 무릎을 꿇었다. 


그는 마침내 페르시아 정복을 결정했다. 페르시아는 만만치 않은 강대국이었다. 페르시아는 키루스 대왕이 통치했다. 키루스는 뛰어난 군주였다. 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가 역사상최고의 리더로 꼽았을 정도다. 


크로이소스도 전쟁에 앞서 심사숙고했다. 아폴로 신전에서 승리할 지 여부를 물었다. 그는 “전쟁이 일어나면 대제국이 몰락할 것”이라는 신탁(神託)을 얻었다. 크로이소스는 신탁을 자의적으로 해석했다. 그는 페르시아가 패배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의 기대는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전쟁은 페르시아의 승리로 끝났다. 페르시아 병사들은 BC 546년 2년간의 전쟁 끝에 리디아의 수도 사르디스를 점령했다.  


크로이소스는 포로로 전락했을 때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페르시아 병사들은 사르디스 곳곳을 불태우고 재물을 약탈했다. 키루스는“내 병사들이 그대의 재물을 약탈하고 있는데 기분이 어떠냐?”며크로이소스를 조롱했다. 


그는 오히려 키루스를 비웃었다. 크로이소스는 “키루스여! 그대의병사들이 약탈하는 재물은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다. 이제는 당신의 소유물이다. 병사들은 당신의 재물을 탈취하고, 그대의 도시를 불태우고 있다”고 맞받아쳤다. 


크로이소스는 뛰어난 발명품에 힘입어 부를 축적했다. 리디아는 인류 최초로 ‘동전’을도입했다. BC 7세기 중반부터 금(金)과 은(銀)의 합금으로 동전을 만들었다. 리디아의 동전은 노동자의몇 일치 임금에 해당하는 가치를 가졌다. 


금과 은 합금을 똑 같은 크기와 중량으로 표준화한 후표면에 그림으로 액면금액을 표시했다. 문맹자라도 화폐의 가치를 확인하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동전의 공급은 거래 비용을 크게 떨어뜨렸다. 물건을 사고 팔 때마다 금속화폐의 중량, 크기, 순도 등을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왕실 전속 작업장에서 동전을 독점적으로찍어냈기 때문에 위조도 불가능했다. 


리디아는 교역 확대를 통해 눈부신 경제성장을 거듭했다. 교역이 크게 늘어나자 거래 편의를 위해 합금 뿐 아니라 순금이나 순은으로도 동전을 발행했다. 다양한 가치를 지닌 통화 공급은 거래를 더욱 활성화했다. 


리디아는 멸망했지만 위대한 발명품은 살아남았다. 동전은 더욱 발전했다. 로마는 금화(아우레우스), 은화(데나리우스), 청동주화(세스테르티우스)를발행했다. 경제력 발전과 함께 다양한 가치의 동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동전은 단점도 갖고 있다. 액면 가치와 실제 가치가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로마 황제들은재정 지출에 충당키 위해 금화나 은화가치를 조작했다. 금이나 은의 함량을 줄이는 꼼수를 동원했다. 인플레가 심화되자 나중에는 ‘무늬만 은화’도 등장했다. 은화에 은이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사회가 안정됐다면 액면가치가 현물가치보다 훨씬 높은 것은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회, 정부에 대한 믿음이 있기때문에 현물가치가 떨어지는 화폐라도 얼마든지 통용될 수 있다. 현물가치가 없는 지폐를 주고 받는 것은그 사회가 지폐의 통용을 강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물가치가 액면가치보다 높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화폐가 시장에서 퇴장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화폐로서 이용하기 보다는현물로 활용하는 게 훨씬 더 큰 이익이기 때문이다. 


10원짜리 동전 960만 개를 모아 동괴(銅塊)로 만든 뒤 고물상에 처분해 1억6000만원의 이득을 올린 사건이 적발됐다. 10원짜리 동전의 현물가치가액면가치보다 높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10원짜리 동전은 결제 기능을 사실상 상실했다. 물건을 살때 10원짜리 동전을 사용해본 기억이 아득하다. 10원짜리동전은 그저 ‘계산 단위’로서만 의미를 가질 뿐이다. 결제 기능을 상실한 화폐를 고수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참고문헌 

1)   Weatherford,Jack. 1997. The History of Money. New York. Three Rivers Press. 

2)   Graeber,David. 2011. Debt : The First 5,000 Years. New York : Melvillehouse. 

3)   크세노폰 지음. 이은종 옮김. 2012. 키로파에디아 키루스의 교육. 주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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