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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재 Feb 22. 2016

소득 없는 성장

가난은 영혼에 상처를 남겨

성장은 했지만 소득은 없어

지속성도 사회통합도 떨어져

기업 이익이 가계로 흘러가야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보노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흔히 그의 화풍을 설명할 때 ‘임파스토(impasto) 기법’이라는 단어를 동원한다. 물감을 덧칠함으로써 특정 부분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한다. 이것은 미술 이론가의 설명일 뿐이다. 


고흐의 강렬한 색채와 거친 붓 터치(touch)는 ‘쉰 목소리로 외쳐대는 절규’ 같다. 출구 없는 방에서 탈출하기 위해 손가락이 으스러지도록 벽을두드리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의 사후(死後)는 찬란하지만 생전(生前)은 참담했다. 10년간 미친 듯이 작품활동에 매달린 끝에 800점의 유화와 700점의 데생을 남겼다. 하지만 생전에 판매한 그림이라곤 단 1점에 불과했다. “언젠간 누군가 내 그림을 사주는 날이 있겠지 …”라는 독백을 늘 되뇌었지만 속절없는 희망일 뿐이었다. 


그의 삶은 곧 궁핍이었다. 적빈(赤貧)은 그림자처럼 평생 고흐를 쫓아다녔다. 언제나 빵 한 조각, 붓 한 자루가아쉬웠다. 그림을 그릴 캔버스(canvas)가 없어 다른 작품 위에 그림을 그린 적도 많았다. 어떨 때는 물건 운반용 나무상자 뚜껑을 캔버스 대신 사용하기도했다. 이중섭(李仲燮)이 종이살 돈이 없어 담배 포장지인 은지(銀紙)에 그림을 그린 것처럼….. 


오늘날 다른 화가보다 고흐의 작품을 보존하는 게 더 힘든 까닭도 가난에서 찾아야 한다. 동생 테오가 정신적.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충분한 것은 아니었다. 돈은 없지만 그림 재료는 절실했기에 저질 물감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서 고흐의 작품은 표면이 잘 갈라진다. 


가난은 많은 것을 파괴한다.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뿐 아니라 사람의 영혼에도 상처를 남긴다. 이런 상처가 확산되면 사회의 갈등과 반목은 일상화된다. 정부 차원에서 사회복지 정책을 통해 절대적인 빈곤을 해소하려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과 함께 ‘국민행복, 희망의 새 시대’라는 국정 비전을 실천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새 정부는 국정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일자리 중심의 창조 경제’ 등 5개 국정 목표를 제시했다. 창조 경제를 달성하기 위해 ‘성장을 뒷받침하는 경제 운영’ 등6개 세부 전략을 추진하기로 했다. 


‘성장’이 중요하다는 데는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성장을 이뤄야 국민들이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소득도 창출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이 행복해지려면 성장의 과실을 적절히 나눠야 한다. 성장을 통해 얻은 소득을 특정 부문에서만 챙긴다면 국민은 불행해진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는 지속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지난 2009년 상당수 국가들이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으로 마이너스성장을 기록했을 때도 한국은 이례적으로 플러스 성장을 나타냈다.


이런 성장을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들만을 위한 성장’에 가까웠다. 상당수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고용 없는 성장’일 뿐 아니라 ‘소득 없는 성장’이었다. 


산업연구원(KIET)에따르면 1975년부터 외환위기 이전인 97년까지 가계와 기업부문의실질 소득 증가율은 각각 8.2%, 8.1%에 달했다. 그러나 2000년부터 2010년까지는 실질소득 증가율이 기업은 16.4%, 가계는 2.4%로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결국 기업은 소득이 늘어난 것에 비례해 임금을 늘려주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에따라 경제성장률과 가계소득 증가율 간의 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이 가장 크다. 


내 손에 들어오는 게 없다면 그런 성장은 무의미하다. 아울러 이런 성장은 지극히 위험하다. 지속 가능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소득, 즉 구매력이 기업에만 쏠린다면 유효수요 부족에 따른 불황을 피할 수 없다. 기업이 물건을 만들어도 제대로 팔릴 수 없기 때문이다.


로버트 라이시 미국 UC버클리대학교 교수는 "2차세계대전 종전 후 미국에서는 중산층에게 돌아가는 소득의 몫이 증가하고, 상류층에게 돌아가는 몫은 감소했지만 중산층의 구매력 확대에 힘입어 상류층을 포함한 국민 모두가 이익을 얻었다"며 "이 과정에서 '번영이 폭넓게 공유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풍요로워질 수 없다'는 의식이 형성됐다"고 지적했다. 


현재의 소득 분배 양상은 분명 기형적이다. 기업 부문의 자금이 보다 많이 가계 부문으로 흘러 나가야 한다. 분배의 개선은 안정적인 성장을 가져올 뿐 아니라 사회의 연대의식도 강화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합치하지 않으면 애정과 충성을 제공하지 않는다. 


새 정부는 ‘우리모두를 위한 성장’을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 행복을위한 길도 열릴 수 있다. 


참고 문헌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안나 수 엮음. 이창실 옮김.2012. 고흐의 재발견. 시소커뮤니케이션즈. 

2)   강두용, 이상호. 2012. 한국경제의 가계 기업간 소득성장 불균형 문제: 현상, 원인, 함의. 산업연구원. 

3)   로버트 라이시 지음. 안진환, 박슬라 옮김. 2011.위기는 왜 반복되는가. 김영사. 

4)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2010. 정의란 무엇인가.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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