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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재 Feb 15. 2016

고립을 자초한 결속

비오9세, 가톨릭을 강화하기 위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거부했다가 

지식인은 물론 일반인의 반발 초래 

교리도 변화를 반영해야 존속 가능


오래 자리를 지키는 게 축복은 아니다. 영광도 누리지만 험한 꼴을 보기 쉽다. 격변기에는 그럴 가능성이더욱 높아진다. 변화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일찍 자리를 떠난 것보다 못할 때도 많다.


비오9세(Pius IX)도 그랬다 그는 32년간 교황으로 재위했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교황으로는 가장 오래 자리를 지켰다. 비오9세보다 오래 재위한 교황은 단 한 명뿐이다. 초대 교황 베드로다. 베드로는 34년간 교황으로서 선교에 주력했지만 십자가에 꺼꾸로 매달린채 순교했다. 반면 비오9세는 침대에서 선종했다. 


비오9세는1846년 6월 교황으로 선출됐다. 상당수 사제들은 그 당시 유럽을 휩쓴 민주주의 및 민족주의 운동을 성원했다.진보적 추기경들은 비오9세를 지지했다. 개혁을적극적으로 실천할 인물로 여겼기 때문이다. 


신임 교황은 이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진보적 추기경들의 믿음에 보답이라도 하듯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했다. 로마교황청 운영에 평신도의 참여를 허용했고, 정치범들을 대거 석방했다. 오스트리아를비롯한 상당수 유럽국가들은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민주주의와 자유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더욱 고조될 것으로우려했다. 


교황은 평범한 백성들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농업학교를 만들어 농민들에게 과학적 영농을 가르쳤다. 교육에 힘입어농업 생산성은 높아졌다. 로마 시내 곳곳에 가로등을 설치했다. 로마의밤은 밝아졌다. 치안 상황은 눈에 띄게 개선됐다. 


가톨릭 밖의 세상에 대해서도 포용적 자세를 보였다. 대표적인 게 유태인에 대한 입장이다. 유태인의 미사 참석 의무를철폐하는 한편 가난한 유태인도 자선 대상에 포함시켰다. 


백성들은 환호했다. 곳곳에서“교황 성하! 만수무강하십시오”라는 축원(祝願)이 흘러나왔다. 비오9세는 경건하고, 진보적인동시에 지적이고, 품위를 갖춘 성직자로 묘사됐다. 


불과 2년만에 칭송은 비판으로 바뀌고 만다. 비오9세가 수구적인 입장으로돌아섰기 때문이다. 민족주의 바람은 교황령을 위협했다. 이탈리아민족주의자들은 통일을 간구했다. 교황령은 이탈리아의 통일을 가로막는 걸림돌이었다. 


이탈리아 민족주의자들은 교황청을 대상으로 테러를 자행했다. 교황청 내무장관을 암살했다. 교황도 1848년 테러를 피해 로마를 잠시 떠나야 했다. 


시대정신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요구했다. 유럽이 1848년 동시다발적인 혁명에 휘말린 것도 이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물론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도사정은 마찬가지였다. 2010년 북아프리카를 강타한 ‘재스민혁명’과 비슷했다. 


교황은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군대의 보호 아래 1년 만에 로마로 돌아왔다. 그는1년 전의 비오9세가 아니었다. 자유를 외치는목소리에 귀를 닫았다. 사상은 물론 정치 개혁에 대해 거부감을 표시했다. 


교황은 시대정신과 담을 쌓았다. 마침내 자유주의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공식화했다. 그는 1864년 ‘오류표(Syllabusof Errors)’를 발표했다. 오류표는 근대 사상에 대한 선전포고였다. 


오류표는 80가지 오류를 용서할 수 없는 잘못으로 규정했다. 양심과 종교와 언론의 자유를 부정했다. 합리주의도 거부했다. 하나님이 아니라 이성(理性)에 의존한다는 이유였다. 교회 밖의 결혼도 비난을 받았다. “교회는 진보와 자유주의, 근대 문명과 화해하고 협력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배척했다. 


현대 정신을 낳은 숱한 저서들이 금서로 분류됐다. 홉스, 로크, 칸트는물론 하이네, 에밀 졸라 같은 문인들의 작품도 금서 목록에 올라갔다. 비판을 막기 위해 교황의 무류성(infallibility)을 내세웠다. 교황은 결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교황은 경건한 자세를 강화함으로써 로마 가톨릭을 강화하고자했다. 그는 내부의 결속을 다졌을 지는 몰라도 고립을 자초했다. 과학자와철학자는 물론 평범한 사람들도 교회를 외면했다. 


이달 4일부터 25일까지 바티칸에서는 세계주교회의(시노드)가 열리고 있다. 보수 성향의 추기경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판하는것으로 알려졌다. 교황이 이혼이나 동성애에 대한 포용적 입장을 보인다는 이유다. 


종교가 이혼을 권장할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하지만 이혼을 죄악시하면 숱한 죄인을 만들게된다. 우리나라에서도 한 해에 10만 쌍 이상의 부부가 갈라선다. 부부는 물론 자녀의 행복을 위해 이혼을 결정하기도 한다. 


교리(敎理)를 손바닥처럼뒤집을 수는 없다. 하지만 교리도 인간을 배려해야 한다. 이를외면하면 하나님의 모습은 너무 잔인해진다. 


참고문헌 

1)     한스큉 지음. 배국원 옮김. 2003. 가톨릭의 역사. 을유문화사. 

2)     에릭홉스봄 지음. 정도영 옮김. 1998. 자본의 시대.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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