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코인 사기의 한복판에 있었다
2025년 여름, 서울 동부지방법원 민사합의실.
법정에는 마스크 너머로도 긴장감이 감도는 두 남자가 마주 앉아 있었다.
피고 윤상현은 차분히 정장을 다듬고 앉아 있었고, 원고 대리인석에는 원고 당사자에게 법률자문을 해주던 강도현이 천연덕스럽게 앉아있었다.
이 싸움은 한 장의 차용증에서 비롯된, 그러나 그 이면에 숨겨진 수많은 퍼즐 조각을 맞추는 싸움이었다.
2020년 12월 윤상현은 친구 장이솔의 권유로 "코어체인"이라는 이름의 암호화폐 플랫폼에 발을 들였다.
코어체인은 빗썸이나 업비트와 같은 코인 플랫폼과 같은 모습이었지만 실상은 다단계 유사수신 사기를 위한 눈속임 사이트에 불과했다.
다단계 사기행위가 코인이라는 가면을 쓰자, 다단계 참여자들은 그것이 나쁜 일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만들었고, 그 헛갈림 속에서 피해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그로 인한 피해액만 무려 2조 원에 달했다. 이에 대해서는 PD수첩에서도 방영된 바 있었다.
그 코어체인의 전무가 민경준이었다.
윤상현이 코어체인에 가입한 날 윤상현은 코어체인 본사에 방문하였는데,
민경준은 윤상현에게 말하기를, 윤상현의 친구 장이솔에게 1,800만 원 상당의 이더리움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장이솔 역시 코어체인의 참여자였기 때문에 윤상현은 이것이 단순한 투자 지원이라 생각했지만, 그날 민경준은 이상한 요구를 했다. '윤상현 명의의 차용증을 써 달라'고.
친구 장이솔은 그 자리에 없었고, 윤상현은 친구를 대신해 민경준의 요구대로 자기 명의로 차용증을 써주었다. 이름만 윤상현이지 장이솔이 이더리움을 지급받은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민경준도, 윤상현도, 장이솔도.
2021년 초, 코어체인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자 민경준은 돌연 윤상현을 사기 혐의로 형사고소했다.
차용증상 돈을 갚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납득하기 어려운 조치였다. 심지어 차용증상 변제일이 오기도 전에 고소를 한 것이다.
그리고 민경준은 수사기관에 출석해 전화 통화를 하듯 행동하다가 자리를 떠나버리는 등 수사에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수사 결과는 불송치. 증거 불충분이었다.
그러자 민경준은 자기에게 법률자문을 해주던 강도현을 원고로 내세워, 자신이 보유하던 그 '차용증상 채권'을 강도현에게 넘겼다. 그것도 불송치 결정이 나기 한 달 전에.
강도현은 곧바로 윤상현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모든 정황은 민경준의 채권양도가 소송을 위한 명목상의 양도, 이른바 '소송신탁'임을 드러냈다.
채권양도계약서엔 대여금 지급의 근거도, 원인도 없었으며 심지어 민경준과 강도현의 소송상 주소지도 같았다. 모든 정황은 강도현이 민경준의 대리인처럼 행동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소송 서류엔 윤상현이 1,800만 원을 빌렸다고 되어 있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차용증만 그렇게 되어 있을 뿐 실제로 이더리움을 지급받은 건 장이솔이었다.
민경준도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당시 민경준의 회사 직원이 장이솔의 코어체인 계정 가입을 도와주기까지 하며 지급을 받게 했으니 말이다.
장이솔은 그 이더리움으로 코어체인의 커피머신 렌탈 사업을 시작했다. 명백히 사업 자금이었고, 민경준은 그 대가로 현금 상환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코어체인의 전형적인 수법이었다.
600만 원을 맡기면 1,800만 원 상당의 코인으로 되돌려준다는, 피해자 수만 명의 똑같은 패턴. 민경준은 그 사기의 고위 관계자였고, 장이솔은 그 피해자이자 참여자 중 하나였다.
민경준이 이더리움을 건넨 날, 윤상현은 현금을 받은 적도 없고, 입금 기록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친구의 이름으로 대신 써준 종이 한 장이 오늘의 재판까지 이끌고 온 것이다.
그런데도 강도현은 민경준에게 양도받은 채권이라며 윤상현에게 대여금 청구를 하고 있었다.
그 배경엔, 윤상현이 코어체인의 단체소송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 있다.
민경준은 윤상현의 계정을 일방적으로 정지시켰고, 이에 항의하던 윤상현에게 뒤늦게 이 민사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법정에서 윤상현은 억울함을 꾹꾹 눌러 담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는 코어체인에 1억이 넘는 돈을 날린 피해자였다.
그런데도 민경준의 한 통의 고소와 한 장의 차용증으로 가해자로 둔갑되었다.
지금 윤상현이 법정에 선 이유는 빌린 적 없는 돈 때문이 아니라, 친구의 요청으로 대신 써준 문서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문서를 근거로 민경준은, 아니 민경준의 대리자인 강도현은 여전히 그를 몰아붙이고 있다.
이 재판은 단순한 민사소송이 아니다. 암호화폐의 광풍 속, 수많은 피해자들이 겪은 어두운 그림자의 일부일 뿐이다. 누가 진짜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 법정은 그 진실을 가려내야 했다.
그 날 법정 밖을 나서는 윤상현의 얼굴은 복잡한 감정으로 얼룩져 있었다.
친구에 대한 한 순간의 우정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은 맞지만,
그 근저에는 쉽게 돈을 불리려고 눈 먼돈에 투자했던 자기 자신에 대한 자책과 연민이 있기도 했다.
윤상현은 사기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들의 사기행위에 일조한 가해자이자
윤상현 자기 자신에 대한 가해자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