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어머니께 편지를 쓰던 중...
종이와 연필을 들었다.
무엇을 쓰려는 건지, 어쩌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하고 싶었던 건지도.
선이골 외딴집 일곱 식구 이야기라는 책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편지를 쓰기로 했다. 아버지에게, 그리고 어머니에게도..
내년이면 여든이 된다는 아버지.
그리고 나는 쉰을 조금 넘겼다.
50이라는 숫자는,
누군가에게 인생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나이라고
나름대로 스스로를 설득해 왔었다.
그렇다면 80은?
그 나이는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 숫자일까?
이 글은, 사실 아버지에게 쓸 편지의 초안을 쓰다가
잠깐 옆길로 샌 기록이다.
편지를 쓰면서,
나는 동시에 두 사람에게 글을 쓰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요즘, 나는 글에 자주 의지한다.
‘의지한다’는 표현이 문득 떠올랐다.
써보니 꽤 괜찮다.
표현이라는 건, 말로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말은 한번 내뱉으면 되돌릴 수 없다.
빠르지만 날카로운 수단이다.
화재 경보처럼 급한 일이라면,
편지지를 꺼내 느긋하게 연필을 깎고 있을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상은, 그렇게 급하지 않다.
되돌릴 수 없다는 이유로
나는 점점 말을 줄이고, 글에 의지하게 된 것 같다.
내 혀는 가끔 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놀란다.
그게 나였다는 사실에.
아마도 혀는 나와 조금 다른 존재일지도 모른다.
고개를 들어 뒷마당의 오래된 나무를 본다.
여름 잎이 한창이다.
그 나무는,
일 년에 두 번 잎을 피웠다 지는 것 같다.
쉰 살이 넘어가는 내 기억이 아직 정확하다면.
그 나무는 지금 몇 해째 저러고 있는 걸까.
내가 모르는 시간들 속에서도,
저렇게 잎을 피우고,
또 지워왔던 걸까.
이제 정말 편지를 써야겠다.
아버지가 생각난다.
더 또렷하게 떠오르는 건,
아버지와 함께 나눈 술자리의 기억이다.
어머니가 안주를 준비해 주셨고,
우리는 작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소주를 나눴다.
그때 아버지는 참 행복해 보이셨다.
정말로, 그렇게 느껴졌다.
그 기억이 선명하다.
이제는 정말,
편지를 써야겠다.
-TK
이야기를 노래로 들을 수도 있습니다.
스포티파이: https://open.spotify.com/album/6jQqx4DhSw2NKEvVbcaB9w?si=3n5s5glJQxKLwFHk0HUOZg
유투브 뮤직: https://music.youtube.com/watch?v=L6p-DL_p4h4&si=u1jNbLTxZwqlZ7x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