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감각을 의심했던 날, 밴쿠버에서
밴쿠버 출장 중이던 수요일 저녁, 혼자 저녁을 해결할 곳을 찾다가 작은 이자카야에 들어섰다. 붉은 초롱불이 걸린 입구, 일본식 꼬치를 굽는 숯불 향, 그리고 목재 테이블 위로 쌓여가는 생맥주잔.
그곳은 조용히 혼술을 즐기기에도 딱 좋았다.
내 옆 테이블엔 50대로 보이는 한국인 남녀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누군가는 오래된 친구 같았고, 누군가는 처음 보는 듯 낯설게 웃었다. 반말과 존댓말이 섞인 걸 보니 아마도 정기적인 모임인 듯했다.
그들은 건강 이야기부터 자녀와의 갈등, 은퇴 후 계획까지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충고와 조언이 오갔다. 진심으로 서로를 도우려는 마음들이었다.
나는 조용히 주문한 꼬치세트와 차가운 사케를 앞에 두고 그들의 대화를 흘려들었다. 혼자 출장 중일 때는 이런 일들이 종종 있다. 낯선 도시의 저녁, 모르는 이들의 대화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시간.
그런데 문득, 며칠 전의 내가 떠올랐다. 출장 전, 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나는 누군가의 조언을 따랐고,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호텔 방으로 돌아와 맥주 한잔을 하며 그 결정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내가 그냥 내 감각을 믿었더라면 어땠을까?”
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스스로 내린 잘못된 결정보다, 남의 조언을 따랐다가 틀린 결과에 더 오래 붙잡혀 있었다.
며칠 전 우연히 읽었던 한 연구가 떠올랐다. 32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었다. 주제는 명확했다.
‘내 판단을 무시하고 조언을 따랐을 때, 후회는 더 커지는가?’
결과는 ‘그렇다’였다. 조언을 따른 사람들이, 스스로 결정한 사람들보다 더 큰 후회와 자책을 느꼈다는 것이다.
왜일까?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반사실적 사고(counterfactual thinking)’라고 설명한다. 사람은 본능을 거스른 선택일수록 더 많은 상상을 만든다.
“그때 그냥 내 감을 믿었더라면...”
“애초에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분명히 망설였었지…”
이런 후회의 문장들은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을 키운다. 결과적으로 감정의 소모는 더 크다. 나는 다시 이자카야를 떠올렸다. 그날 밤, 서로를 위로하고 조언을 건네던 사람들의 모습은 선했다. 하지만 나는 알 것 같았다. 우리는 종종 ‘후회하지 않기 위해’ 조언을 구한다. 하지만, 그 조언이 내 감각과 어긋날 경우, 이중의 후회를 남긴다는 것.
'결과에 대한 후회, 그리고 나 자신을 믿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한국이라는 사회에선 이런 일이 더 자주 일어난다. 집단의 의견, 어른의 말씀, 조직의 논리—이 모든 것은 개인의 판단보다 앞설 때가 많다. “함께 의논해서 결정한 거야.”라는 말은 마치 책임을 나누는 듯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내 감각을 억누른 선택일수록, 결과가 좋지 않을 때 더 깊은 자책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결국 그 집단을 선택한 것도 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날 밤, 호텔 창밖으로 밴쿠버의 불빛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조언을 듣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내 안의 목소리를 무시할 때 발생하는 감정 비용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조용히 던져보자.
이 조언은 내 감각과 일치하는가?
결과가 좋지 않으면, 나는 얼마나 후회할까?
지금, 나는 남보다 나 자신을 더 많이 탓하게 되진 않을까?
맥주잔을 비우고, 찬물에 컵을 헹구었다. 손끝이 시렸다.
자기 신뢰는 오만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적 책임을 지는, 가장 정직한 선택이다. 그리고 어쩌면, 조언이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선물일지도 모른다.
--TK
PS: 한국어와 영어, 두 언어로 부르는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 어떤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https://open.spotify.com/track/22WRohwMiC5E2XD0KfOfez?si=8aebe83df1c644c5
https://open.spotify.com/album/2cHvl9BbbtaepMCrGcB8jZ?si=fU9yzGLZTTCQJPNmclUZF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