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에 약 380만 개.
하루로 환산하면 3천3백억 개.
처음 이 숫자를 들었을 때는 무슨 소리인가 했다. 빌 게이츠나 일론 머스크의 자산 이야기쯤 되나 생각했다. 그런데 이 숫자의 주인공은 의외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몸 안에서 새로 태어나고 있는 세포의 숫자다.
아무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 몸은 생각보다 훨씬 더 바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고, 버리고, 다시 채운다. 이렇게 생성과 교체가 반복되다 약 7년이 지나면 우리 몸의 대부분은 완전히 새로운 세포로 바뀐다. 물론 예외는 있다. 뇌세포처럼 거의 평생을 함께하는 세포들도 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7년마다 세상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을 것이다. 말을 익히고, 걷는 법을 배우고,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다시 외워야 했겠지.
그런데 여기서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7년이 지나 내 몸의 대부분이 ‘새로운 세포’라면, 나는 여전히 같은 사람일까? 아니면 물리적으로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걸까?
이 질문은 결국 철학으로 흘러간다. ‘나’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몸일까? 기억일까? 경험의 축적일까? 아니면 그 모든 것이 섞여 만들어진 어떤 흐름일까?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차라리 다 새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지나온 실수도, 상처도, 후회도 함께 사라질 테니까.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
반대로 어떤 이는 바뀌어지는 것을 불안해할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것 아닌가.” 지금이 충분히 행복하고 계속 이렇게 살았으면 하는 생각.
지금까지 쌓아온 나의 정체성은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 있는 걸까. 그래서 이 질문은 가볍지 않다. 우리는 매일 같은 이름으로 살아가지만, 실은 끊임없이 바뀌고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라는 것은 고정된 실체라기보다 변화 속에서도 이어지는 어떤 이야기, 혹은 스스로를 계속해서 ‘나라고 부르는 선택’ 일지도 모른다.
7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세포로 보면 거의 다른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낀다. 그 사실이 조금은 신기하고, 조금은 위로가 된다.
다른 이들은 어떤 쪽일까. 다시 태어나는 것을 반길까? 아니면 변하지 않는 무언가를 붙잡고 싶을까? 어쩌면 우리는 이미, 매일 조금씩 새로워지고 있으면서도 같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T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