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미 내가 아니라면?

by TK

어느 날, 갑자기 ‘나’라는 감각이 사라진다. 몸은 그전처럼 움직이는데,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없다. 무엇이 나를 움직이는지 알수가 없다. 이건 영화 같은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대부분은 이렇게 말하겠지. “나는 내가 뭘 하는지 알고 있어.” “나는 내 의지로 행동해.” 정말 그럴까?

조금 낯선 이야기를 하나 해보자. 간흡충(liver fluke)이라는 기생충이 있다. 처음에는 달팽이 안에서 시작한다. 그러다 달팽이가 남긴 점액을 개미가 먹게 되면서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기생충은 개미의 몸 안으로 들어가 결국 뇌까지 이동하게 되고, 그 순간부터 개미는 더 이상 온전히 자신이 아니다. 낮에는 평소와 다르지 않게 일을 하고, 움직이고, 다른 개미들과 함께 살아간다. 그런데 해 질 무렵이 되면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개미는 풀잎 위로 올라가 턱을 고정한 채 매달린다. 그 상태로 뭔가를 가만히 기다린다. 왜일까. 그 시간에 소나 양 같은 동물들이 풀을 뜯어먹기 때문이다. 개미는 본인이 의사와는 상관없이(?) 먹히게 되고 기생충은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개미는 스스로 선택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이제 다시 우리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오늘 하루, 당신은 몇 번이나 휴대폰을 들었을까? 이메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드레드 등등.. (너무나 많아 다 나열할 수도 없다). 그때마다 정말로 내가 선택한 것일까, 아니면 그냥… 개미가 풀위로 올라가듯 손이 먼저 움직였을까. 우리는 스스로를 꽤 믿는다. 나는 의식적으로 행동한다고. 나는 내가 결정한다고.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순간에 우리는 생각 없이 반응한다. 알림 하나. 짧은 자극 하나. 익숙한 습관 하나. 그리고 이미 화면을 보고 있다. 마치 개미가 소의 뱃속에 들어가 버린 것처럼.

최근에 읽은 Survival of the Sickest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우리의 행동과 반응 중 많은 부분이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시스템에서 나온다는 것. 그 문장이 좀 불편했다. 우리는 개미처럼 기생충에 조종당하는 존재는 아니다. 하지만 전혀 영향받지 않는 존재도 아니다. 습관에 의해, 환경에 의해, 보이지 않는 패턴에 의해 조금씩 끌려간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잘 모른다. 그래서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나는 내 삶을 통제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내 삶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이 정말로 의식적인가?”

개미가 위험한 이유는 자신이 조종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데 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이 질문을 남겨본다. 당신이 휴대폰을 들 때, 그건 정말 당신의 선택일까. 아니면 내가 아닌, 바로 기생충이 움직인 개미와 비슷한 움직임일까. 어쩌면 답은 간단하다. 확인해 보면 된다. 조금 멈춰서 지금 이 행동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한 번만 들여다보면.


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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