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마음,정신의 근력을 키우는 에세이 ' 몸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이었습니다.
일정을 마치고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교육업체 00대표에게 오랜만에 문자가 와 있더군요.
“강사님, 다름이 아니라 5월에 진행한 교육이요…
00시에서 생각했던 흐름과 조금 차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10월 교육은 아쉽게도 진행이 어렵게 되었어요.”
00대표는 지난 4월, 00시청에서 5월, 10월, 11월.
3회차에 걸쳐 강의를 의뢰했었습니다.
남아있는 회 차를 모두 취소한 것은 강사생활 17년만에 처음이었습니다.
‘얼마나 강의가 마음에 안 들었으면 남아있는 회 차를 모두 취소했을까?’
알고 싶었죠. 교육 담당자가 생각한 강의의 흐름이 무엇인지.
“혹시 00시쪽에서 어떤 흐름을 기대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개선하고 싶은 마음에서 여쭤봅니다.”
“담당자는 우선 강의의 흐름이 교안 순서대로가 아닌 감정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가,
스트레칭을 했다가 다시 감정으로 갔다가 하는 등 준비가 되지 않았다 느꼈다고 해요.
교육생들은 강사님의 강의가 너무 정적이었다고 하는 피드백이 많았고요.”
여러가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날, 교육담당자의 눈빛이 기억나더군요.
강의를 마치고 강단에서 내려오는데
위, 아래로 훑으며 서 있던 담당자의 눈빛을.
사실 그날 집에 오는 내내 찝찝해서 연결해주었던 교육회사 대표에게
문자를 보내고 답변을 기다리던 참이었습니다.
“대표님, 오늘 강의의 흐름이 의뢰하신 흐름과 맞는지 궁금하네요.
피드백 받으신 것 공유해 주실 수 있을까요?
10월과 11월에 있을 강의를 잘 운영하고 싶어서요.”
느낌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신입 강사시절, 강의 후 스스로 찜찜한 느낌이 들었다면
피드백을 물어볼 필요도 없다는 선배 강사의 조언도 생각나더군요.
문자를 받고 난 뒤, 다시 그날로 돌아가
어떻게 강의를 했는지 복기했습니다.
‘교안대로 하지는 않았지. 현장의 흐름상 먼저
신체적 에너지를 채우는 활동을 하긴 했지.
교육담당자는 교안 순서대로 하는 것이
‘준비된 모습’이라고 생각했구나.
교육생들은 강의가 정적이었다는 피드백을 주었는데…
내가 생각한 동적인 활동과 수강생이 생각한
동적인 활동에 차이가 있었구나.
근육이완법도 하고 걷기활동도 했는데…
어떤 것을 동적인 활동으로 기대한 것일까?’
1회차 교육을 교훈삼아 2회차, 3회차 수업을
더 잘 구성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였는데
기회가 물거품처럼 사라졌습니다.
며칠간 아쉬움과 더불어 수강생들의 귀한 시간을 망친 듯해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마음을 흔들더군요.
시간이 흐를수록 합리화인지 변명인지 알 수 없는 항변이 이어지다가
이내 슬픔과 자책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래…내가 대강당 강의는 못하지…’
‘그래…저번에 천안 강의때도 지루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내 강의가 정적이긴 하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하더니
‘난 강사로서 자격이 없는 거 같아.
강의를 그만 두는 게 나을지도 몰라.’ 라는
결론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저의 뇌는 강의를 잘 못했던 경험들을
서너 가지 더 수집해서 스스로를 괴롭혔죠.
순간, ‘지금 부족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은 거야?’
‘마음 속 히틀러가 승리하기라도 바라는 거야?’ 되묻게 되더군요.
마음은 참으로 요상하죠. 스스로를 가스라이팅 하며
자격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고 싶은 사람 마냥
쉴 새 없이 비슷한 정보를 수집해 괴롭히니 말입니다.
그날 저녁 마음을 다잡고 책상에 앉았습니다.
새로운 콘텐츠를 구상하던 중에 재독하던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 ‘나는 무엇인가?’ 의 문장들이
마음에 깊이 스며 들더군요.
‘개인은 영어로 ‘Individual’ 즉, ‘분리될 수 없는’ 이라는 뜻이지만
이것은 육체적 의미에서 ‘나눌 수 없다’는 의미다.
허나 개인이라는 단어보다 더 작은 단위의 분인(저자가 만든 언어)은
Dividual 나눌 수 있는 존재다. 우리는 여러 분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면 외향적인 나와 내향적인 나, 즉흥적인 나와 계획적인 나,
감성적인 나와 이성적인 나, 약한 나와 강한 나 등 다채로운 분인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상호작용하며 출몰한다.
만약 부족한 나를 발견했다 해도 그것이 나의 인격을
대변하는 대표 분인은 아니다. ‘부족한 나’는
그저 여러 분인 중에 하나일 뿐이다.
지금 느끼는 분인의 구성비율을 중시하느냐 마느냐는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다.’
'그러네. 00시청 강의에서 강의력이 부족했던
‘김근하를 대표 분인인 양 해석하며 우울해하기는 억지가 있지.'
생각하니 적잖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물론 출몰한 분인을 성찰 없이 자기연민으로만 대하지는 않을 겁니다만.)
그러고보니 지난 H기업 강의에서 한 수강생이 수업을 마친 후 다가와
“강사님 제가 작년에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이혼도 하게 되면서 긴 시간 우울증에 시달렸었어요.
그런데 오늘 강의를 듣고 나서 마음치유가 엄청 되었어요.
꼭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감사해요.”
라는 피드백을 받기도 했으니까요.
내가 한없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느껴질 때마다 아래의 문장을 떠올리고 싶었습니다.
‘마음은 다른 분인의 구성비율을 얼마나 중시하느냐 마느냐에 달려있다.
부족함을 발견했다고 해도 그것이 나를 대표하는 분인은 아니다.’
더불어 TVN 드라마 ‘미지의 서울’의
미지 할머니의 대사도 함께 기억하고 싶더군요.
드라마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를 드리자면,
달리기 3개월만에 전국 서열 1위를 차지하며 급부상하던
주인공 미지는 경기 중 다리를 다치게 됩니다.
재활을 잘 했으면 됐을 텐데 조급한 마음에 깁스를 풀고 달리다가
선수생활 불가판정을 받게 되었죠.
그 뒤로 미지는 세상과 단절한 채 3년을 방에서 칩거합니다.
손녀딸이 방에서 나오지 않자, 안타까운 할머니는 미지와의 대화를 시도합니다.
“미지야~ 할머니 들어갈께. 왜 이러고 있어. 답답하게… 할머니 봐 봐.”
“싫어.”
“싫어? 싫음 말아야지. 아이고 우리 번데기.
얼마나 큰 나비가 되려고 이러나.”
“아니, 나 아무것도 안 될 거야. 할머니 나 진짜 정신병인가 봐.
다 너무 후회되고 걱정돼서 아무것도 못 하겠어.”
“뭐가 그렇게 후회되고 걱정이야?
어제는 끝났고 내일은 아직 멀었는데.”
“모르겠어. 나도 진짜 나가야 되는 거 아는데
다시 아무것도 아닌 때로 못 돌아가겠어.
거기 밖에 돌아갈 데가 없는 것도 아는데, 너무 초라하고 지겨워.
나한테 남은 날이 너무 길어서…아…아무것도 못하겠어.
할머니…나 너무 쓰레기 같아.”
“사슴이 사자한테 잡아 먹힐까 봐 도망가면 다 쓰레기야? 다 살려고 싸우는거잖아.
소라게도 살려고 숨는 거야. 미지도 살려고 그런거잖아.
암만 모양 빠지고 추저분해 보여도 살려고 하는 짓은 다 용감한 거야.”
할머니의 마지막 문장이 제게도 큰 위로가 되더군요.
다양한 경험 속에서 살려고 애쓰는 내게
내가 나라는 이유만으로 너무 가혹하게 대했던 것은 아닌가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