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할 때

몸, 마음, 정신의 근육을 키우는 에세이 '몸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모델 일을 할 때였어. 그날은 내가 피날레를 장식하는 중요한 무대였지.

하지만 엄마는 그날 누군가 크게 다치는 꿈을 꿨다며 무대에 서지 말라고 했어.

내가 다칠 거라며.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엄마의 기우였을 뿐.

미래를 늘 걱정하는 엄마가 내 미래를 망친 거야!”


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에서 ‘복동희’라는 인물은,

예지몽을 꾸는 엄마의 과도한 걱정 때문에

자신의 중요한 무대를 포기했다고 말합니다.

이 장면을 보며, ‘미래를 미리 걱정하는 것’이

과연 우리 삶에 자원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더군요.

예지몽을 꾸지 않더라도 비슷한 일을 적잖이 경험합니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 갑자기 들이닥치는 생각들로 말이죠.


‘이렇게 뒷목이 뻐근하다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거 아니야?’
‘이런 기분이 계속되면 우울증에 걸리는 거 아니야?’
‘혹시 나중에 요양원에서 쓸쓸하게 죽는 건 아닐까?’


미래는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그 일을 마치 눈앞에 있는 현실처럼 상상하고 불안해합니다.
머릿속 시뮬레이션은 끝도 없이 펼쳐지고, 생각은 점점 더 견고하게 뿌리를 내립니다.
‘너 그렇게 살아도 괜찮겠어?’라는 질문으로 불안을 더욱 강렬하게 조정하죠.


몸은 주인이 들려주는 ‘불안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편도체 안에서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 생존에 위협이 느껴지는

경험을 장기적으로 기억합니다. 불안감을 느꼈던 경험과

비슷한 경험을 하거나 회상하기만 해도 편도체가 활성화되면서

불안감이 다시 증폭되죠. 그런 우리에게 내면소통의 저자,

김주환 교수는 말합니다.


“나쁜 일에 대한 기억이나 미래에 대한 걱정은 편도체의 활성화를 가져옵니다.

편도체는 온몸에 ‘위기 상황’이 발생했음을 알려주는 일종의 화재 경보 시스템과 같죠.

불안감을 낮추는 방법은 활성화된 편도체안정화시키고

전두엽활성화시킬 수 있는 활동을 하면 됩니다. (줄여서 편. 안. 전. 활)

편도체는 몸을 움직일 때 비로소 안정화됩니다.”








불안이라는 손님, 그 안에 숨겨진 진짜 마음


불안은 사실, 아주 정중하게 우리를 찾아오는 손님일지도 모릅니다.
몸 어딘가 가 조용히 긴장되고, 마음 어딘가 가 묘하게 불편해질 때,
불안은 몸을 두드리며 우리에게 말하죠.

‘혹시 너, 무언가 간절히 바라는 게 있는 거 아냐?’

심리학자 마샬 로젠버그는 말합니다.
“모든 비극적인 표현은 사실 ‘Please’나 ‘Thank you’의 또 다른 방식이다.”
불안 역시 ‘나 지금 이 순간, 이것이 필요해/간절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한번, 불안함의 표현들을 ‘Please’로 바꿔보겠습니다.


“혼자 살다가 고독사하면 어떡하지?”
→ “함께하고 싶어. 가족과 연결되어 있고 싶어.”

“몸이 자꾸 부어. 혹시 큰 병이면 어쩌지?”
→ “건강하고 싶어.”

“딸이 늦게 들어와서 걱정이야.”
→ “딸이 무사히, 안전하게 들어오기를 바라.”


생각의 언어는 불안이지만, 몸은 이미 내면 저 깊은 곳의 바람(Needs)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안한 생각에 잠식되는 순간, 등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턱은 꽉 다물어지고, 잠이 안 오기도 하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죠.

몸은 먼저, 우리가 지금 생존을 위해 경계 중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친정 엄마와 나눈 대화가 생각납니다.
“요즘 잠이 너무 많아졌어. 아무래도 이상해.”
“잠이 많아지면 왜?”
“아버지도 돌아가시기 전 두 달은 그렇게 주무셨잖니.

나도 이렇게 잠이 늘다가 죽는 건 아닐까?”


친정 엄마는 잠이 많아진 자신을

‘죽음에 가까워지는 몸’으로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몸이 보내는 자연스러운 변화조차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두려움으로 변질되곤 합니다.

마샬 로젠버그 박사의 제안처럼 Please의 번역기를 돌린다면

엄마의 바람은 ‘건강하고 싶어, 잠을 자더라도 편안하게 자고 싶어.’가 아닐까요?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요즘 하루에 얼마나 움직여?”
“허리가 아파서… 교회 갈 때도 혼자 다녀올 자신이 없어.”
“그럼 어디까지는 왕복으로 가능해?

“아파트 후문?”

“그럼 아파트 후문까지만 산책하는 것부터 시작해 볼까?”


그날 이후 엄마는, 아주 짧은 거리지만 매일 규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불안의 그림자가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죠.






불안은 생각에서 커지고, 몸의 움직임으로 작아집니다.

미래를 상상할수록, 불안은 점점 커지죠.
하지만 작은 행동,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아주 사소한

실천 하나가 불안을 미래에서 현실로 되돌려줍니다.


불안은 우리의 적이 아닙니다.
무엇을 간절히 원하는지 알려주는 마음의 소리입니다.
불안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여보세요.

몸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안전하고 싶다는 것을.

불안이 찾아오는 순간,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요?
“불안하구나. 지금 무엇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거야?”
그 질문 하나가, 마음 깊은 곳의 바람을 듣게 해 줍니다.
그 바람의 소리를 아주 작고 소소한 행동들로 화답하다 보면

불안의 밀도는 점점 낮아질지도 모릅니다. 10분 걷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안부 문자 보내기, 잠자리 전에는 핸드폰 멀리하기,

잠들기 전 마시면 좋은 차 한잔하기 같은 사소한 것들부터 챙겨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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