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연결 전에 자기 이해를 위한 관계 에세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던 적 있는가?
'왜 이렇게 말이 안 통하지.'
상대는 분명 한국어로 말하고 있는데
나는 전혀 다른 언어를 듣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공감을 해 달라는 뜻이었는데
분석을 하며 해결책을 내 놓는가 하면
불편하다고 말했는데 그새 까먹고
동일한 행동을 하길래 말했더니
"내가 뭘 언제 그랬다는거야!"라고
도리어 화를 내기도 하고.
말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멀어지는 느낌말이다.
"세상에 다른 언어가 몇 개인 줄 아나?
"7,100개 정도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아니, 세상 모든 사람의 수만큼 있지."
'이 사랑 통역되나요?' 드라마 속 대사가
무척 공감이 되었다.
우리는 같은 말을 쓰고 있지만
나와 같은 의미로 상대가 듣지 못할 때가 왕왕 있다.
각자의 경험, 양육 방식, 필터링된 기억 속에서
말의 온도와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 건
어쩌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사랑 통역되나요?' 드라마에서
다중언어 통역사인 주호진 씨는 차무희를 대할 때마다
혼란스럽다.
"호의로 듣고 다가갔는데
아니라고 밀려났습니다.
거절로 알고 피해 줬더니 굳이
여기까지 찾아오서 저러는 게
다시 시작되는 호의인지
거절에 대한 미안함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못 알아들어 답답하겠네.
못 알아들은 채로 그냥 둘 건가?
통역사라는 사람이.
모르는 말이라면 공부를 해야지.
단어도 순서도,
느낌표인지 물음표인지.
자네가 쓰는 말이랑 다를 텐데
잘 들여다보고 잘 해석해 봐."
어떻게 하면 그녀의 마음을 잘 해석할 수 있을까?
예전에 어느 통역사분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그 나라의 문화를 알고
상황에 따라, 맥락에 따라
표현되는 단어를 잘 살펴야 한다.
동일한 단어도 다르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차무희 씨가 호진 씨를 좋아하면서도
사랑을 불신하고 회피하는 이유는
그녀의 유년시절 경험 때문이다.
어릴 적 엄마에게 살해당할 뻔했던 경험,
그리고 줄곧
"넌 사랑받지 못할 거야.
아무도 널 사랑하지 않을 거야."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던 그녀는
누군가 그녀에게 다정하게 대하면
의심부터 하게 되었다.
양육과정안에서 불안정한 애착관계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제야 그녀가 왜 그토록
불안해하며,
"난 안될 거야."
"저 사람은 지금 거짓말하는 걸 거야."
"난 사랑받지 못할 거야."라고 말하는지
그녀의 언어가 이해되었다.
상대의 언어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서로의 트리거와 신념을 털어놓아보자.
심리학에서 트리거(trigger)란 방아쇠라는 뜻으로
과거의 강렬한 기억이 현재를 위험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신호다.
과거에 나를 다치게 했던 방식은
뇌에 장기기억으로 남는다.
그리고 비슷한 상황이 오면
경보음처럼 울린다.나를 살리기 위해.
"위험해.
도망쳐."
문제는,
더 이상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몸이 먼저 반응한다는 것이다. 자동적 반응처럼.
나 역시 트리거가 된 경험이 있다.
누군가가 빠른 속도로,
연달아 질문을 던질 때면
심장이 이유 없이 두근거리고
화가 올라왔다.
신혼 때 신랑은 단지 궁금해서 묻는 것이었는데
나는 취조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 심리학을 공부하며 '기억정리'를 하면서 알았다.
어릴 적, 부부동반 모임으로 외출을 하고
돌아오신 부모님이 크게 싸우신 적이 있다.
아버지는 엄마를 무릎 꿇게 하고는
큰 목소리로 질문들을 쏟아냈다.
"그 옷이 그게 뭐야!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게 할 소리야?"
엄마는 안방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아버지는 쉴 새 없이 엄마의 언행을
답이 정해진 질문으로 나무랐다.
이 기억은 성인이 되어서도
내 안의 트리거로 남게 되었다.
문제를 지적하며 질문할 때,
질문을 하며 목소리를 높일 때,
내 몸은 나도 모르게 어릴 적 불안감에 휩싸인
김근하로 돌아가 있었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보다 안전하기 위해
목소리 큰 사람들을 경계해야 했고,
질문을 들으면 회피하거나
발끈하기도 했다.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언어의 패턴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
경계 모드로 들어가는지,
어떤 말에 유독 마음이 다치는지,
그 감정 뒤에 어떤 신념이 숨어 있는지.
이걸 모른 채 대화를 하면
우리는 자꾸만 상대를 오역하게 된다.
상대의 언어를 잘 이해하고 싶다면
격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킨 사건(트리거)과
그 경험을 통해 얻게 된 신념을 알아보자.
어떤 사건이었나요?
(언제, 어디서, 누구와 있었던 사건인가요?)
그때 당신의 감정은 어땠나요?
그 경험을 통해 얻게 된 신념은 무엇인가요?
신념을 이해하는 일은
그동안 나를 지키느라
긴장하고 있었던 마음을
조금은 느슨해지도록 돕는다.
그리고 그 여유가 관계를 돌아보는
틈을 가져다 준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이
유난히 힘들게 들리는 날이 있다면
이렇게 물어봐도 좋겠다.
'이 말이 아픈 이유는
지금의 너 때문일까,
아니면 오래된 너의 기억 때문일까?'
우리는 모두
각자의 언어로 살아왔다.
그러니 완벽한 소통보다
서로의 마음을 번역하려는 태도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그것이 관계를 연결하는 힘이라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