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도
나는 조용조용 설명한다. 당신은
고함치는 말로 듣는다.
당신은 올리브 가지를 내민다.
나는 가시를 느낀다.
<로저 맥거프의 '당신과 나'>
왜 우리는 비둘기를 매로 보고,
올리브 가지를 가시로 느끼는 걸까요?
같은 말을 들어도 전혀 다르게 해석하고,
아무런 악의 없는 제스처조차 날 선
공격처럼 느껴질까요?
그건 우리 안에 저마다 다른
‘생각지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지도는 단순한 관점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 축적된 경험, 가치관, 상처, 기대, 불안이
선명하게 새겨진 일종의 정서적 내비게이션입니다.
나는 나만의 지도대로 세상을 보고,
당신은 당신만의 지도를 따라 표현하고 행동합니다.
각자의 지도를 상대에게 들이댄다면 갈등이 벌어지죠.
지도를 읽는 방식이 저마다 다를 테니까요.
며칠 전, 시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어머니, 요즘 어떠세요?”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
"..."
예전 같으면 “아이고, 우리 어머니 힘드신갑 보네…”
하고 넘겼을 법도 한데, 그날은 왠지 욱 하게 되더군요.
‘정말 왜 자꾸 저런 말씀을 하실까?
살고 싶으시면서 왜 저런 말을…아, 지친다…’
순간,
“어머니, 좀 긍정적으로 말씀하시면 안 돼요?”
말하고 싶은 날이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말씀은 ‘죽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저 ‘힘드니 나 좀 더 돌봐 죠.’라는
간절함의 표현일 뿐이라는 걸요.
하지만 저의 반응은 ‘교정’이었습니다.
위로가 아닌, 어머니의 생각을 교정하고 싶은 마음.
“자꾸 힘들다고만 하지 마시고
몸을 움직이려고 노력하세요.”
그 순간 저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몸이 아프셔서 병원입원이 잦으셨던 아버지,
그러면서도 퇴원하면 술은 끊지 못하셨던 아버지,
자신의 건강이 안 좋아진 것은 모든 것은
잘 챙겨주지 않은 엄마 탓으로 돌렸던 아버지.
이러한 경험들 덕분에(?) ‘아프다’는 말은
무기력함과 책임 전가, 의지박약으로 들립니다.
그래서 “아… 너무 아파.”라는 소리를 들으면
바로 저만의 생각지도 이정표가 출몰합니다.
“약한 척하지 마. 강해져야 해.
스스로 처리해. 의지하려고 하지 마.”
시어머니의 말은 저에겐 단순한 푸념이 아닌,
‘짜증’을 유발하는 촉진제가 되어 버린 거죠.
결국, 저는 올리브 가지를 가시처럼
받아들인 셈입니다. 저의 고착화된 생각을 알아차림 없이
표현하면 관계 안에서 대화를 나눌 때
갈등요소로 작용하겠죠.
들은 대로 듣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지도대로 상대의 말을 해석할 테니까요.
서로 다른 지도를 존중할 때
우리는 서로 다른 지도 위에 서 있습니다.
같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난 형제조차도요.
누군가는 불편한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을
선호하고 누군가는 침묵으로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것을 선호합니다.
누군가는 인정의 말로 사랑을 표현하고,
누군가는 음식으로 사랑을 표현합니다.
이렇게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도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도
각자의 지도안에서 표현됩니다.
인간관계 안에서는 다양한 지도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엉킨 대화를 푸는 첫걸음은
‘나와 당신은 다른 지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의 지도를 읽어 나가며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자신만의 지도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우기까지
어떤 맥락 안에 존재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과정을 내밀하게 톺아볼 때
우리는 조금 덜 다투고, 조금 더 잘 듣고,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