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를 하고 나왔다. 얼굴에 로션을 바르려고 서랍을 열었는데 며칠 전에 사둔 마스크팩이 보였다. 뒷면을 보니 진정효과가 있다는 글자가 눈에 띈다. 어디 한번 얼굴부터 진정시켜볼까. 나도 모르는 사이 쑥쑥 자란 머리를 묶어야 해서 고무줄을 찾는데 없다. 청소할 때면 여기저기 흔하게 보이던 그 고무줄이, 혹시나 청소기 안으로 빨려 들어갈까 싶어 냉큼 주워놓은 그 고무줄이, 오늘따라 단체로 외출을 했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물건은 필요할 때면 없다. 돈도 그렇고 친구도 그렇고 먹을 것도 그렇다. 어쩌면 그렇게 하나같이 필요할 때면 사라지는지. 꼭 마법 같다. 선반 위를 뒤져도 없고 가방을 뒤져도 없다. 여기저기 깨작깨작 뒤적이다 잠시 손을 쉬이고 추리에 들어간다. 자, 생각해보자. 과연 내가 고무줄을 어디에 놓았을까. 이렇게 물건이 다 보이지 않을 땐 어딘가에 잘 모셔져 있는 게다. 화장실 선반인가. 뒤적뒤적, 실패다. 나라는 인간은 치밀하게 잘 정리해서 둔 곳을 모르던지 생각 없이 버리던지 둘 중 하나다. 이번엔 후자인가 보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결국엔 아쉬운 대로 부엌 서랍에 있는 노란 고무줄을 꺼내 머리를 질끈 묶었다.
드디어 팩을 집어 들어 윗부분을 죽 뜯었다. 하얗게 영양분이 듬뿍 묻어있는 팩 종이를 알코올 솜 꺼내듯이 집게손과 엄지를 이용해 살포시 꺼냈다. 접어져 있는 팩을 살포시 펴서 얼굴 면적을 생각하며 잠시 거울을 바라본 후 과감하게 척척 발랐다. 제법 면적을 잘 계산했는지 눈 코 입이 제대로 보였다. 내 얼굴이지만 13일의 금요일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제이슨 형님처럼 보였다. 가면을 쓴 나는 잘 진정되어가고 있다.
보통 기분이 우울해지거나 통제불능인 내 감정을 만날 때면 하염없이 걷는다.
모든 일을 잠시 내려놓고 걷다 보면 내 감정은 어느새 진정이 되어있다. 내가 터득한 방법은 그냥 걷는 것이다. 그렇게 걷는다고 해서 모든 감정이 다 나긋나긋 해지는 건 아니다.
소위 말하는 뚜껑이 열리기 직전에 다다른 감정들은 성큼성큼 걷다 보면 잠시 차분해진다.
그러다 나도 모르는 사이 차분한 감정이 내 안에 가득 차있음을 알게 된다.
여행을 떠나도 되도록이면 걷는 쪽을 택한다. 어디를 가든 도착하면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걷기 시작한다.
걷는다는 것은 몸속의 감정들을 한 바퀴 돌리는 작업인 것 같다. 걷다 보면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 있던 어지러운 감정들이 어느새 발바닥 아래로 내려와 내 발자국에 쿡쿡 박힌다. 그렇게 나는 나를 진정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