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깨우는 방법

낮 산책

by 구루

아침잠이 쉬이 깨지 않는 날이다. 우리 집에는 은근하게 코를 골며 자는 동거개가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매일 깊은 잠에 들지 못한다. 코를 고는 게 그의 의지와 상관없는 자연의 이치임을 알기에 깨울 수도 없다. 나이 많은 할아버지개라서 나는 이해한다. 고로 동거인인 나는 매일 꿀잠 자는 걸 포기했고 동거개는 포기를 모르는, 매일 밤이면 코를 고는 상남자개가 되었다. 정신 못 차리는 뇌를 깨우기 위해 나는 억지로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는 이미 중천에 떠다니는 해를 힐끔 보고도 혹시나 얼어 죽을까 싶어 알래스카인가 어딘가에 산다는 이누이트족보다 더한 컨셉으로 꽁꽁 싸맨 후 집을 나섰다.


공원에 들어섰다. 저 멀리 눈에 띄는 물체가 있었다. 그것은 빵을 배달할때 담는 그것. 네모난 빵박스였다. 어린 시절 학교 급식실 옆에 쌓여있던, 진한 풀색의 네모난 박스 안에는 멀리서 보니 낙엽 같은 게 담겨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양파 같은 게 담겨 있었다. 웬 양파가. 이 겨울에. 이 공원에. 하필 여기에. 하고 생각하며 천천히 다가갔다. 서너 명의 사람들이 동그랗게 생긴 쿠션 의자에 앉아 그 양파를 심고 있었다. 양파를. 이 겨울에. 하필 이 공원에. 저 정체불명의 양파는 뭐란 말인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호기심을 이기고 물어볼 용기가 없었다. 쭈뼛거리다 결국엔 그들을 지나쳐 지나왔다. 그리고는 의도치 않게 공원을 돌기 위해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분명 나는 공원을 여기저기 둘러보며 한 바퀴 돌았다. 하지만 한 바퀴를 다 도는 동안에도 내 뇌는 자꾸만 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기에 내가 눈으로 본건 깡그리 다 잊었다. 빵 박스에 들어있는 저것은 무엇인가. 궁금함을 참지 못한 나는 결국엔 그 정체불명의 박스 근처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얼쩡거리는 열정의 댓가로 박스에 붙어있는 이름표를 볼 수 있었다.

이름 : Tulip.... 어쩌구라고 쓰여 있었다. 아 이게 튤립이구나. 튤립도 마늘처럼 알뿌리를 심는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정말 양파처럼 생겼는데 튤립이라니. 신기했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튤립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그 양파의 이름은 튤립 구근이었다. 튤립의 구근을 심는 기간은 10~12월, 서리가 내리기 전이 적기라고 한다. 그래야 봄에 꽃이 핀다고. 아 그렇구나. 뇌는 이미 깨어 있었다. 우리집 상남자개 덕분에 어떤 튤립이 필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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