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배우다 4화

우이령길

by 구루

맨발로 걸어보고 싶었다. 이곳은 우이령길. 흙을 좋아하던 좋아하지 않던 발에 모래가 밟히는 느낌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보면 그 느낌을 잊기 어렵다. 오독오독. 밟을 때마다 마을을 파괴하는 공룡이 된 느낌이다. 선선한 흙 덕분에 발바닥이 시원하다. 산사나무 산초나무... 처음 보는 나무들이 고개를 넘어가는 길가에 이름표를 달고 서 있다. 우이령길은 북한산의 한 켠인 우이동에서 반대편 구파발로 넘어가는 길이다. 오래전에 짐을 실은 우마차가 산을 가로질러 터벅터벅 넘어가던 지름길이라서 우이령길이라 불렸다고 한다. 그러다 한국전쟁 때 군사도로로 사용하기 위해 길을 넓히게 되어 숲길의 정취는 사라졌고 1968년에 무장공비가 이 길로 넘어오는 바람에 2009년까지 일반인의 통제가 되었던 길이다. 하여 사전에 허락을 받아야 걸을 수 있는 유일한 북한산 둘레길이다.


길가에 핀 꽃처럼 어여쁘게 노래하던 새가 내 발소리를 듣고 노래를 멈춘다. 나도 멈춘다. 서로 경계한다. 흙길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내 몸이 온도를 맞춘다. 사람이 많지 않다. 사람은 산으로 쉬러 오는데 산은 쉬고 싶을 때 어디로 갈까. 까만 열매가 매달려 있는데 한참을 들여다보고 검색을 해봐도 잘 모르겠다. 이름을 모르면 어떠하리. 이리 외딴곳에서 만난 것도 인연인데 한번 더 눈인사하고 지나간다. 저 멀리 오봉바위가 보이기 시작한다. 몇 년 전에 보았던 그대로 그 모습으로 차분히 앉아 있다. 오봉바위에는 전설이 있는데 이 지역 고을 원님에게 어여쁜 외동딸이 있었다고 한다. 그 딸이 얼마나 어여쁜지 총각 다섯이 장가를 들기 위해 경합을 벌였다고 한다. 현오봉바위는 건너편 능선에 있던 것인데 이 다섯개의 바위를 지금의 오봉으로 던져 올리는 것이었다. 다섯개의 오봉은 그 다섯 총각이 쏘아 올린 사랑의 하트인 것이다. 바위 다섯개가 다 올라간 걸로 보아서는 5명의 남편을 두었을지도 모르겠다.


길을 걷는 내내 아카시아 향기와 푸른 이파리에서 뿜어내는 햇빛 냄새가 온 산에 퍼져있다. 순식간에 석굴암 입구에 들어선다. 바람에 흔쾌히 울려주는 풍경소리가 너무도 5월스럽다. 석굴암 마당 한 켠에 소나무 아래에 앉을만한 의자가 있다. 의자 옆 계단에 앉아본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이다. 계단 맨 위에 앉아있으니 겨울왕국에 나오는 공주가 방금 전 지나간 것처럼 바람이 차다. 그렇게 절 안에서 한참을 앉았다가 일어선다.


솔솔솔 어여쁜 소나무의 솔방울이 이쁘고, 연두 나무가 바람에 연두연두하고 흔들린다.

언어는 관찰 속에서 만들어진다.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관심 있게 들여다보아야 함을 또 한번 깨닫는다. 구파발쪽 입구로 가까울수록 숲이 더 울창하다. 반대편 초입이 가까울수록 숲을 벗어나는게 아쉬웠는데 뜻밖에 선물을 만났다. 구파발 방향 초입에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는 민들레 수십 송이가 피어있었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목인건지 일부러 민들레 씨를 뿌린건지 알 수 없다. 이러나저러나 나에게는 천국이다. 다만 민들레가 피어 있을 뿐인데 마치 내가 핀 것처럼 감동시킨다. 그렇게 나는 5월에 푹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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