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배우다 5화

봄비는 연두색

by 구루

비가 오는 월요일. 산책을 하려 문을 나선다. 문을 열자마자 차가운 기운이 다리를 휘감는다. 바닥이 푹 젖어 있다. 빨간 신호등에 걸려 건너편에서 공원을 바라본다. 온 산이 연두색 물감을 뿌려놓은 듯 더욱 연두연두하다. 봄비는 연두색이다. 나는 이 순간이 제일 좋다. 이 횡단보도를 건너면 자연의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참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나무에서 뻗어 나온 가지가 제법 비를 막아준다. 비가 오는 산은 인기척이 없다. 새들마저 자리를 비웠다. 고요하다. 오직 산이 주인이고 나무와 흙과 풀과 바람이 주인이다. 나뭇잎이 가득한 숲 속의 빗소리는 빌딩 숲의 것보다 더 크게 들린다. 빗소리에 한없이 빠져있을 즈음 한 10미터 정도 떨어진 참나무에서 이름 모를 새가 한번 울고는 다시 날아간다.


빗소리는 규칙적이다. 두둑 둑~ 둑 두둑. 내가 듣고 싶은 박자에 맞춰 떨어진다. 신기하다. 내 마음에 맞춰 날 위해 연주하고 있다. 처음엔 보슬보슬 내리던 비가 점점 굵어진다. 접어두었던 우산을 다시 펴서 나무 보호막 아래 또 하나의 보호막을 만들어 준다. 우산의 크기로 인해 신발까지는 보호할 수가 없다. 신발 위로 한두 방울 빗물이 떨어진다. 신발을 보호하자니 내 몸이 삐죽 우산 밖으로 나간다. 최대한 몸을 움츠려 발을 모아 보지만 소용이 없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신발을 포기한다. 우산 끝에 맺힌 빗방울이 점점 커지더니 땅으로 툭~ 떨어진다. 하늘의 속했던 비가 땅으로 속하는 순간이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그렇게 비는 땅으로 스며든다.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포복하는 자세로 요란을 떨며 지나간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사냥을 하는 중인 것 같다. 고양이는 물에 젖는 걸 싫어한다 들었는데 저 친구는 예외인 것 같다.

대지 1-100.jpg

비와 바람의 조합이 좋다. 다리부터 머리끝까지 온몸을 싱그럽게 한다. 비가 오는 날, 내가 이렇게 산을 만나러 오는 순간 자연의 신도 산을 만나러 올 것이다. 싱그러움을 만나러 올 것이다. 그 싱그러움은 매일 만들어지는데 내가 몰랐던 것이다. 매일 이렇게 만날 수 있는데 나는 특별한 무언가를 매일 기다렸다. 그 특별함은 내 안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매번 잊곤 한다. 만나고 싶다면 내가 찾아 나서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숲 속에 있을 때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


반대편 산너머에서 뻐꾸기가 울기 시작한다. 보슬보슬 비가 연무처럼 퍼져서 내려앉는다. 슬슬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작가의 이전글자연에서 배우다 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