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여행 기록
'사불범정'이라는 사자성어는 '사필귀정'보다 덜 쓰이지만
내가 믿는 진리와는 좀 더 들어맞는다.
온라인 국어사전에 두 사자성어의 뜻풀이를 검색해 보니 다음과 같았다.
- 사불범정 : 바르지 못하고 요사스러운 것이 바른 것을 건드리지 못함. 곧 정의가 반드시 이김을 이르는 말.
- 사필귀정 :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길로 돌아감.
크게 보면 비슷한 말이고 유의어 관계지만
실제로 와닿는 느낌이 다르다.
반드시 정의가 이긴다니 드라마 같지 않은가.
직장에서 한창 고통받을 때는 '반드시 정의가 이긴다.'는 문구만으로는
전혀 위로받지 못했다.
인생을 나보다 오래 산 선배들이 아무리 말해줘도
그 말에 믿음이 안 갔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 내 경험으로 그게 맞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 말이다.
몽골의 평균 해발고도는 약 1,580m.
반면, 한반도 평균 해발고도는 약 448m 정도라고 한다.
확실히 우리나라에서처럼 편하게 걷거나 뛰는 느낌은 아니었다.
야트막한 산 언덕 정도에 게르가 위치해 있었는데,
다른 게르로 넘어갈 때 조금이라도 경사가 지면 바로 숨이 차올랐다.
테를지 국립공원 속 '열트산'에서 트래킹을 했다.
눈으로 보기에는 무척이나 완만한(우리나라 산 경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언덕 오르막 길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열트산 초입 시작점은 해발 1,400m, 정상은 1,900m인 보기와는 다른 어마무시한 곳이었다.
한 걸음 뗄 때마다 무척 숨이 차서 자연스럽게 걷는 속도가 천천히 맞춰졌다.
천천히 걷다 보니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곳에는 건물이란 게 없으니 그냥 초록빛 초원일 뿐이지만
그 광경은 시시각각 걷는 대로 생동감 있게 변하는 중이었다.
직장 다니며 출퇴근 길에 한시라도 빨리 가려고 지름길을 외우게 된 나는
어느 순간 주변 지형지물은 전혀 외우지도 못하게 됐다.
그냥 오직 네비와 도로상황만 체크해 가며 이리저리 차선변경을 하다 보면
목적지에 도착해 있을 뿐이었다.
그런 생활을 하다가 여유롭게 걷고 있으니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편안함을 느끼게 됐다.
그러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와...!" 감탄이 나오는 모습이 있었다.
숨이 차지 않게 조금씩 앞으로 나가다 보니 어느새
트래킹 코스 초입부 주차장이 작은 점만 할 정도로 작아져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산맥과 하늘이 더 커진 상태로 펼쳐져 있었다.
조금만 높이 올라와봐도 다 보이는 것을...
내가 저기 보이는 '점'일 때는 정작 바로 옆 나무, 게르가 너무 커다래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었다.
이래서 시야가 넓어져야 한다고 하는구나.
직장에서 만난 A는 시야가 좁은 사람이었다. 당장의 이익만 쫓아
멀리까지 보며 수를 읽지 못했다.
그렇지만 A는 계약직임에도 나이 많은 '실세' 어른들에게 무척 잘해서
예쁨 받곤 했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회사 내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는 것에
스스로의 자존감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열심히 하던 일들도 어느새 놓기 시작했다.
업무분장으로 명백히 나뉜 자신의 일들도 갈수록 남이 하도록 책임을 넘기거나 미뤘다.
회사 동료, 선배 직원들은 그런 A의 태도에도 '계약직이니까 아마 불안감이 심해서 그런 걸 거야~'
라는 말들로 그 행동들을 봐주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작은 불똥들이 나에게까지 튀었다.
부서에서 처음 시작하는 프로젝트가 생겼다.
원래 하던 업무가 아니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열린 방법들이 있었다.
나와 A가 전체 업무를 분담하여 같이 완성하거나
A가 먼저 진행한 프로젝트에 대한 결과를 내가 공유받아 최종 결론을 도출하고 마무리하는 방식.
어차피 같은 부서 업무기에 나는 적극적으로 투입되어 함께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혼자 모든 업무를 수행하라'는 통보였다.
어떻게 이런 업무분담이 생겼는지 알아보는 과정에서
당당히 업무 책임을 넘겨버리는 A의 태도를 마주치고 굉장히 화가 났지만,
팀장을 설득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 여러 번 논리를 대어 말씀드렸다.
당시 팀장은 회피적 성향이 강했고 리더십이 매우 부족한 사람이라
이 같은 상황을 정리하지 않았고, 계약직 직원이니까 봐주고 정규직인 나만 희생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식의 본인만 편리한 방법으로 처리하려고 했다.
회사에서 월급은 그대로 받아가지만 맡은 '일'은 못하겠다고 하는 직원과
그 말을 듣고 다른 사람에게 시켜버리는 무책임한 사람들.
앞서 말했듯 처음 하는 프로젝트라 선행 지식이 없었고,
선배들에게 물어가며 할 수 없는, 오로지 결정을 혼자 해야 하는 내게는 무거운 업무였다.
팀장도 역시나 그 일을 모른다며 알아서 결정하고 진행하라고 했다.
더군다나 그 일 이후, 그렇게 결정이 난 것이 미안하다 도와주겠다는 식의 예의상 말도 일절 없는
뻔뻔한 A의 태도 때문에 지옥 같았던 5개월을 보냈다.
억울했던 나는 그 상황을 지켜보던 선배들에게 조언을 많이 구했다.
부담이 큰 업무만큼이나 내 마음이 갈수록 무거워져 더 이상 회사를 다니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처음 그렇게 일이 발생했을 때만 해도 선배들은 누구의 편도 들지 못하고
A의 입장과 나의 입장 모두에 공감해 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한테 뿐만 아니라 주변 모두에게 심통을 내는
A의 태도로 인해 선배들도 내게 마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 당시 내가 스스로에게 걸었던 주문은 '반드시 정의가 이긴다.'였다.
그렇게 되뇌면서도 매일 마주하는 현실은 아닌 것 같아서 힘들었다.
얄밉게 행동하는 사람들만 편안하고 행복하게 잘 살고, 묵묵히 남에게 피해 안 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 짐들을 다 떠안는 것 같아서 좌절하는 중이었다.
감정적으로 휘둘리던 몇 개월이 지나고
냉정하게 내가 이기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못나게 행동하는 아랫 직원들을 가르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며,
일만 해결되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가진 윗사람들이 가득한,
의사결정이 잘못된 걸 알면서도 고치지 않아 망해가는 조직에서 하루빨리 탈출하기.
당장 사표 쓴다는 것을 가족과 여러 지인들이 말려서
이직을 하기로 했다.
그동안 내 업무는 철저히 흠잡히지 않도록 잘 해내기로 동시에 마음먹었다.
그리고 반드시 정의가 이기는지 시험해 보기로 했다.
결과는 그 일로부터 정확히 10개월 뒤에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꽤나 오랜 인고의 시간이 지나야만 정의가 이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니...
우선 나는 이직에 성공해서 전 회사에 비해 더 좋은 조건으로 더 나은 사람들과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당시에 잘 버틴 보람이 있었다.
직장에서의 억울한 마음은 어느 정도 정리하고 새 출발 중.
팀장은 내가 떠나기 전 이미 원하던 만큼의 개인 성과가 나오지 않아
많이 실망하는 모습을 봤다. 놀랍게도 팀장을 제외한 나머지 팀원들은 개인 성과가 좋았다.
남들의 노력을 공짜로 받아 혼자만 잘되려고 했던 이기적인 사람의 가장 적절한 최후였다.
가장 중요한 A는 어떻게 됐을까?
계약기간 종료 전 남은 휴가를 탈탈 다 털어 쓰고 업무 정리도 안 한 채로 도망치듯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한동안 소식을 못 듣다가,
어느 회사 정규직 채용 필기시험에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때 이후로 어디에도 취업하지 못하고 여전히 백수 생활을 한다라...
생각했던 것보다 더 통쾌한 결말인데...? ㅎㅎ
그 사람이 나에게 준 고통을 시간으로 치면 5개월이었다.
본인도 나와 동시에 얼마 정도는 괴롭긴 했을 테니 A가 고통받은
총 시간을 계산하면 10개월이다. (그리고 아직 정규직이 됐다는 얘기를 못 들었으니 아마도 그 이상이 될 예정이다.)
남에게 준 고통은 나에게 2배로 돌아온다.
반드시 정의는 이긴다.
높은 곳에 올라가야만 보이는 세상이 있다.
현실에 가장 편안한, 숨 쉴 때도 딱히 노력이 필요 없는 장소에만 머물지 않고
가끔 높이 올라가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해발 1.7m 인간이 한 치 앞밖에 못 보는 것은 당연하다.
열트산 트래킹 초입 1,400m와 열트산 정상 1,900m로 올라갈수록 볼 수 있는 것은 명백히 다르다.
'사불범정' 어쩌면 이치에 따라 세상이 작동하는 중인데,
그 시간을 인간의 시간선에서 쫒다 보니 당장 해결되지 않는 것들에 연연하게 되는 것 같다.
더 큰 세상에서 더 큰 시간대로 생각해 보면
역시나 사불범정. 이치에 따라 결과가 나오는 법이다.
몽골여행에서 나는 또 한 뼘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