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 밥 먹는 속도, 걷는 속도를 맞추는 사람

유럽 여행 기록

by 도토리의 일상

누군가와 함께할 때, 스스로 밥 먹는 속도나 걷는 속도를 신경 쓰지 않고 있다면,

상대방이 나를 배려해주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도 좋다.

다른 두 사람이 모이면 움직이는 속도는 차이 나기 마련이므로.

생각 없이 잘 맞는다고 느꼈다면 한쪽이 배려 중이라는 뜻이다.


걷는 것은 대화중이라면 어느 정도 맞춰지니까 그렇다 치지만,

밥 먹는 속도까지 맞는다는 건 유심히 상대방을 관찰하며

음식을 씹는 속도나 집어드는 속도도 신경 쓰고 있는 꽤나 다정한 사람이라는 증거다.


그리고 이런 사람을 지금까지는 잘 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나조차도 성격이 급한 탓에 누굴 맞춰준다거나 하기 어려웠다.

별 의도 없이 생각 없이 밥을 먹다 보면 어느새 혼자 다 먹고 기다리고 있는...


웃기게도 속해있던 어떤 조직에서나

눈치 전혀 보지 않고 끝까지 늦게까지 식사하는 사람은 늘 있었다.

느리게 먹는 사람을 빠른 사람이 기다려 주는 것은 어느새 당연시된 매너인데,

반대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속도를 맞추는 건 양방향 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여행을 같이 한다는 것은 어쨌든 앞에 두 가지는 맞춰야 한다는 얘기다.

타야 할 기차가 있고, 예약해 둔 식당이 있을 때 일행의 맞춤은 더 필요해진다.

그래서 나는 여행 중에 더더욱 상대방의 속도를 의식하는 편이다.


오래 걸어야 하는 유럽에서는 각자의 컨디션 체크는 필수다.

볼거리가 없으면 또 모르겠는데, 10걸음마다 유적지가 나오는 이탈리아같은 나라에서는

유적들을 다 돌아보다 보면 하루에 3만 보는 기본이 된다.


쪼금만 더 가보자, 저기 판테온 있대.

여기서 5분만 더 가면 메디치 가문 저택이 나온대.

체력이 좋고 호기심이 왕성한 나는 항상 설득하는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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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어렸을 때는 여행지를 모두 걸으며 빠짐없이 구경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해 안 된 적도 많다.

그럴 때는 굳이 데려가려고 하지 않고 혼자 보고 오면 된다고 생각했다.


만약 자신이 나와 같이 여행하는 유형의 사람인 것 같다면,

나이를 조금 더 들어보면 바뀔 수 있다... :)

체력이 부족해진 지금은 핵심만이라도 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함께 여행하는 사람의 소중함도 알게 되었다.

같이 보면서 웃고, 사진 찍고 감상을 나눌 때 그 여행은 더 특별해지는 것 같다.

물론 혼자 여행하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고, 좋아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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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혼자 알아서 되는 일들은 없듯이.

여행에도 각자의 역할이 부여되기 마련이다.

나는 주로 전반적인 여행 계획을 세우는 역할을 맡곤 하는데,

여행을 따라다니는 것보다 주도적으로 나서서 끌고 가는 걸 훨씬 즐겨한다.

그렇게 하면 수고스럽고 힘들 순 있지만, 그 여행의 주도권을 갖게 되고

더 흠뻑 여행 속으로 들어가 그 자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계획을 짜면서 여러 사람의 니즈와 특징을 더 잘 파악하게 되었다.

친구 A는 식사만 잘 챙겨주면 여행에 만족하는 타입,

친구 B는 오래 걷는 걸 싫어해서 반드시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타입...


이런 디테일까지 반드시 내가 맞춰줘야 할 필요는 없지만

나란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여러 사람들의 만족감 높은 모습을 보면

오히려 행복해지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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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군가의 걸음과 밥 먹는 속도를 기다려주는 사람일까?

앞으로 더 많은 여행을 하며

더 다듬고, 더 다정해질 것으로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