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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잎 Jul 28. 2019

라이온킹, 벌레먹는 사자가 아버지가 되기까지.

라이온킹. 오랜만에 한 세대를 넘어가는 서사를 보았다. 아버지와 아들을 넘어서 손주까지 이어지는 긴 이야기가 좋았다. 그동안 많은 영화에서는 짧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고 나도 짧은 이야기에 익숙했다. 라이온킹은 참 길었다. 긴 이야기를 보면서 큰 감동을 느꼈다. 고전이 오래 살아남는 이유를 실감했달까. 


심바(왼쪽)와 티몬과 품바.

     

이미 모두 다 아는 얘기지만, 그토록 긴 서사를 보는 것이 자체로 감동이었다. 라이온킹은 성경의 모세이야기와 햄릿 등의 고전 서사에서 얘기를 가져왔다고 들었다.      


내가 아는 고전이라고는 몇 개 없지만 서사를 따라가니 고전은 고전이구나 싶었다. 왕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신분을 까먹고 살아가는 심바. 심바는 ‘하쿠나 마타타’를 부르면서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산다. 하쿠나 마타타를 자신의 진리로 여기면서 말이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자연세계에서 얼마나 큰 강자인지, 어떤 힘이 있는지 의식적으로 까먹은 채 자신이 처한 곳에서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 벌레를 먹으면서 산다. 벌레를 먹는 사자라니. 라이온킹이 실사 영화라 그런지 벌레를 먹는 장면이 더 뜨악하게 느껴졌다.

      

원작 애니메이션에서는 티몬과 품바가 벌레를 먹는 것이 오동통하고 끈적이며 그럼에도 매우 맛있고 담백하다고 묘사하고 있었지만 실사영화에서 벌레를 집어 우적우적 씹어먹는 심바의 모습을 보자니, 미각까지 내게로 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 끔찍하게 맛이 없는 느낌. 그리고 나는 고기가 얼마나 맛있는지 잘 알기 때문에 심바가 더 안쓰러웠다.

      

그렇게 심바는 평화롭게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벌레를 먹으면서 지낸다. 마음 한 쪽 구석에서는 아버지를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과 아버지가 자신에게 말해주던 그 무수한 말들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심바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그저 ‘하쿠나마타타’, 근심 걱정은 잊고서 삶을 즐기는 수밖에 다른 도리는 없다.      


그러다가 그가 사자이며, 그가 왕으로서 왕국을 다스리는 임무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존재들이 찾아온다. 오래전 친구였던 날라와 그의 탄생을 축복했던 원숭이다. 그는 그들을 통해 잊고 있던 자신의 신분을 깨닫고 현재의 하쿠나마타타의 삶과의 충동을 견디며, 오랜 고뇌와 괴로움 속에서 심바는 아버지를 만난다.      


무파사와 심바.


아버지는 “네가 누구인지 잊지말라”고 말한다. 그 말에는 너는 사자이며 너는 왕국을 다스릴 임무가 있으며 그러니 네 자리로 돌아가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서사의 구조가 나는 얼마나 아름답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라이온킹이 담고 있는 서사는 그저 흥미를 끌기 위해 재미있게 만들어낸 이야기라기보다 진리의 한토막을 갖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떤 진리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진리는 '방황을 하면서 분노하고 가족을 떠나 있는 사람들'이 그래도 결국 제자리인 가족으로 돌아가야 한다거나, '자신이 고유하게 지닌 개인의 특성을 잘 발휘해서 살아야 한다'거나 하는 구체적 상황에 적용되는 진리를 넘어서는 것 같다. 

      

사랑이 심바를 에워싸고 있었고, 비록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죽음 뒤에도 그의 사랑이 남아서 그를 도왔듯이, 그리고 심바는 다시 아버지의 자리에 앉아 새로운 생명을 품에 안았듯이, 사랑이 죽음을 넘어선다는 진리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사랑안에 다시 들어갈 수 있도록 많은 이들이 도와준다는 사실 말이다.

      

생명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사라져 죽지만, 자식을 사랑하는 사랑은 죽음 뒤에도 발휘된다. 그래서 그 사랑은 생명을 살린다는 것. 그런 생각이 들어서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심바는 날라와 가정을 이뤄 다시 또 새로운 생명을 자라게 할 것이다. 


새로운 생명이 자신이 사자임을 깨닫지 못하고, 그리고 내가 왜 사자의 임무를 해야하는지 물으면서 방황해도 자식의 방황을 심바는 아버지로서 지켜보고 견딜 것이다. 그리고 아들에게 “네가 누구인지 잊지말라”는 말을 해주고 적절한 교육과 훈계를 해줄 것이다. 그렇게 생명이 죽고 다시 자라고 순환한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그리고 고양이과 사자가 나는 너무 귀여웠다. 내 고양이도 생각나고. 고양이과는 어쩔 수 없는 고양이인가보다. 


새로운 왕의 탄생을 축하나는 동물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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