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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잎 Jul 13. 2019

엄마의 김밥과 그걸 쌤한테 갖다바친 고딩시절의 나.

나는 고등학교를 다닐 때 0교시에 참여했다. 아침 7시반까지 학교에 도착해서 자습을 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서 정규수업이 시작됐다.

나의 아침은 날마다 힘들었다. 아빠는 나를 7시에 깨웠는데 아침잠이 많은 나는 일어나지 못했다. 아빠는 나를 일으켜줬고 안경을 씌워주고 어깨 안마까지 해줬다. 그러면 나는 잠에서 간신히 깨어났다. 엄마는 내가 아침을 거를까봐 나를 위해 김밥을 날마다 말아줬다.

아빠는 학교 앞까지 차를 운전해 나를 학교에 내려다 놨다. 그리고 나는 엄마가 날마다 말아준 김밥을 먹지 않고는 교무실에 달려갔다. 그 김밥을 내가 좋아했던 국어 선생님께 갖다드렸다. 한심한 노릇이었다.

나는 그 선생님을 진심으로 좋아했다. 내가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도 선생님께 인정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이 강해서 선생님께 뭐라도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고등학교에서 0교시를 참여했던 것은 아마도 고딩시절 3년 내내였을 것이다. 나는 3년의 아침을 힘들게 일어났고 아빠는 3년동안 나를 일으키고 나를 차로 학교로 데려다놨고 엄마는 3년의 김밥을 말았다. 그것이 내가 겪은 고등학생 때의 한식이다. 내게 한식은 김밥이었다.

국어 선생님은 20대 후반~3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총각 선생님이었다. 나는 선생님께 인정받는 것을 인생의 가장 큰 낙으로 삼고 있었다. 심화반 수업도 선생님이 개설한 수업을 골라서 들었고 방과 후 수업도 일부러 골라서 들었다.

나는 정규수업이 끝난 뒤 심화반 수업에도 참여했고 독서실에서도 공부를 했다. 독서실 감독 선생님이 누구인지가 당시 내게는 매우 중요했다. 어떤 선생님인지를 미리 파악해서는 그 과목에서 몰랐던 문제를 가져가서 선생님께 풀이과정을 들었다. 그렇게 나는 열심히 공부하고 있음을 선생님들께 어필했고 또 그런 방식으로 독서실에서의 자습 시간을 활용했다.

아침마다 엄마가 말아주는 김밥을 받아든 국어 선생님은 "매우 맛있다"며 며칠을 맛있게 먹다가는 "이제는 받을 수 없다"며 다시 돌려줬다. 마음에 상심이 가득했던 나는 왜냐고 물었고, 너의 엄마가 너에게 보여주는 정성을 내가 받을 수는 없다고 대답했다. 당시에는 그저 상심했을 뿐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나의 고등학교 시절 곳곳에는 사랑이 가득했다. 당시 나는 늘 짜증을 냈는데 아침에 일어나기도 싫었고 공부하는 것도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시험을 잘 못치면 서럽게 울어대기도 했다.

언젠가는 선생님이 내가 목표로 했던 대학교가 아닌 중위권 대학교를 추천하면 자존심이 몹시 상해 엄청나게 화를 내기도 했다. 화를 이기지 못해 조퇴를 해버리고 동네 공원을 빙빙 돌았던 적도 있다. 그만큼 나는 자존심도 몹시 강했다.

다 지나간 일이지만 그 시절이 기억나는 것은 여전히 그 아침의 전쟁 때문이다. 김밥과 그리고 아침잠. 그때의 멋있는 국어선생님.



성인이 된 나는 여전히 아침 잠이 많고 또 자존심도 여전히 매우 강하다.

그리고 이제는 아빠가 나를 아침마다 깨우지 않는다. 엄마도 내게 김밥을 말아주지 않는다. 또 나 또한 순수하게 누군가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제 내가 김밥을 먹고 싶으면 내가 스스로 김밥을 말아서 누구에게도 주지 않고 나만 먹는 인간이 돼 버렸다. 가끔은 그 전쟁같던 아침과 순수하게 열정적인 당시의 내가 그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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