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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잎 Jul 13. 2019

정신병자의 기록이 아닌, 우리 모두의 연약함 기록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제목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다. 처음에는 트렌드에 편승한 책이라고 생각해서 관심을 안뒀었는데 실제로 읽어보니 생각보다 아주 좋았다. 순식간에 1권과 2권을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작가는 정신병이 있으며 정신과에 다니면서 치료하는 일지를 적은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 정신병자의 일지라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냥 내 얘기를 적어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작가는 나보다 더 용기가 있어서 '행복해지기 위해' 정신과를 찾아간 것일 뿐이다.


미친 인간이 하는 말이라기엔 너무나  평범하고 너무나 일반적인 내용이다. 내가 느끼기엔 조금 더 연약하고 조금 더 소심하고 그래서 조금 더 괴로워하는 인간이 스스로의 그런 모습을 인정하고 나아지기 위해서 정신과 의사의 말을 주의깊게 듣고 있고 기록해나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여느 인간보다 학습의지가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학습의지가 없다면 이것을 녹음 하고 다시 기록한 뒤 세상에 용기있게 책으로까지 출판할 수 없을 것이다.


진료를 해주는 정신과의사는 현명하고 참을성이 높다. 마치 현명한 부모의 역할을 대신 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작가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멘토가 없는 시대' '가르침이 사라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필요로 하는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규범과 기준이 없어 혼란을 느낀다.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감정을 느끼는 것,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과 관련해 아무런 규범과 기준도 존재하지 않아서 혼란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정신과의사가 해주는 말을 기준으로 삼고 이에 위안을 얻는다. 이 의사는 진료를 넘어서 어떤 규범까지 제시한다. '그 정도 생각생각을 하는 것은 괜찮아요. 실제로 행동한 건 아니잖아요.'


정신과 의사는 감정을 느끼는 법, 분노나 힘듬, 짜증을 표현하는 방식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것이 비뚤어진 방향으로 자신을 향해 표출하는 것, 예를 들어 스스로를  자책감으로 몰아넣거나 괴롭히는 방식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돕는다. 이 감정표현 방식을 배우지 못한 것이 작가에만 한정된 일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배워야한다고 생각한다. 나를 비롯해서.


여기에 더 나아가 규범까지 제시한다. '그 행동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말고 술에 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해야하는 건 술을 끊는 것이죠. 자책하는 게 아니라.' 라는 말 같은 것. 정신과의사가 규범까지 제시해줘야하고 그것을 기록한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로 우리는 심각한 규범 부재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하다. 학교 교육에서도 그런 것을 배우지 못했고 교회 등 종교도 그 기능을 상실했으며 그렇다고 가정에서 배우지도 못한다.


우리가 한순간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는 핸드폰에서는 '혐오의 감정'만이 만연하다. 쉽게 감정을 느끼고 이것을 참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표현을 해버리고 그것을 '사이다'라고 칭찬한다. 그런것을 하기 어려워하는  소심하고 연약한 인간들은 그렇지 못한 스스로를 바라보면서 자책을 하고 멍청하고 답답하다고 생각한다. '중간의 세계'는 없다. 모든 것은 극단이다.


작가에게서는 이러한 극단적 모습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극단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은 작가가 미성숙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친구나 연인관계를 극단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완전히 의존해버리거나 아니면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은 나에게서도 보일 뿐 아니라 인터넷으로 묶여있는 모든 관계에서 나타난다. 우리는 '사이다' 아니면 '고구마'다.


개인적인 얘기를 줄줄이 늘어놓기 때문에 초반에는 지루할 수도 있지만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위안을 얻을 것이다. 정신과의사가 건네는 조언은 따뜻하게 느껴지고 작가가 솔직하게 고백하는 찌질함과 멍청하고 답답한 이야기들이 사실은 매우 별거 아니라는 것을 독자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독자인 나도 나를 괴롭히는 문제가 제3자 입장에서 보면 이럴 수 있겠다는 시각을 얻게 되고 해결책도 얻을 수 있다.


"지금 상대방의 행동을 다 '거절'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죠." 내가 밑줄친 문장 가운데 하나다. 그냥 쉬운 조언으로 보이지만 얼마나 날카롭고 정확한가.


그리고 그 정확한 조언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뒤 행복해지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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