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풀잎 Dec 21. 2019

분노로 밀어넣는 상사, 능력을 끌어내는 상사

직장에 다니는 것은 아주 짜증난다. 특히 직장에서 찍혔을 때는 더욱 그렇다.


나는 직장에서 찍힌 지 오래고 이직준비를 해왔지만 이직이 쉽지 않아 회사를 계속 다니고 있다. 그러다가 부서가 이동돼 새로운 부장과 팀장 밑에서 일하게 됐다.


부장은 실력있는 데스크였고 팀장은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세상에. 회사에서도 이런 다정함을 느낄 수 있다니. 이런 일이 내 인생에도 일어나다니. 감격했다.


부장은 서울대 출신에 메이저언론사 출신이라 그런지 기사를 쓰는 법을 아주 잘 알았다. 그리고 내게 기사쓰는 법을 정말 자상하게 알려줬다.


부장의 지시로 인해 나는 이제야 비로소 기사를 쓰는 법을 배운 것이다. 그동안 부장들이 기사 쓰는 법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건 그들도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최근 어떤 기사를 썼다. 그 기사는 전날 있었던 일의 '해설기사'였는데 국장은 전날 있었던 것과 새로 쓴 기사의 내용이 어떻게 다르냐면서 내게 신경질을 내고 소리를 질러댔다.


내가 만약 자연인이었다면, 나는 내 성질대로 행동했을 것이다. 나는 그를 노려보고 침을 바닥에 퉤하고 뱉은 뒤 야이 ㅅㅂ 누군 소리 못질러? 말하는데 지금 안듣고 있는거는 너야! 몇번을 말해. 이거 해설을 줄줄이 달았잖아 해설기사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자연인 상태가 아니라 직장인의 신분이었으므로 그저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자리에 와서는 혼잣말로 "진짜 ㅈㄹ하고 난리났네. 그래서 내가 아침에 비판하는 쪽으로 쓴대니까 지가 긍정적으로 고치라고 해놓고. 이제와서는. ㅅㅂ" 중얼댈 뿐이었다.



나는 모든 감정을 매우 크게 느끼는 편이다. 설렘, 행복, 기쁨 같은 감정은 아주 크게 느껴서 사랑에 빠지면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은 내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다 알고 있을 정도다.


그에 더해 분노와 짜증도 아주 크게 느낀다.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분노와 짜증을 내 몸에 담아내는지도 몰랐다. 나는 국장을 향한 분노의 감정을 처리할 방법을 알지 못해 연락하고 있는 모든 친구들에게 내가 분노하고 있단 사실을 알렸다.


그럼에도 화는 풀리지 않고 국장을 엿먹일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드라마 보좌관을 떠올리자면 복수를 향한 남자의 감정은 거의 메말라있다. 차분하고 냉철하다. 그런 상태에 있어야만 복수를 할 수 있는 것인데 나는 반대다.


일단 집에 가야하니 기사를 다시 써보자. 하고는 비판적인 기사로 방향을 틀어 다시 작성하기 시작했다. 물론 나의 구원인 부장비판적으로 쓰라고 지시했고 나는 그에 따른 것이었다.


두시간 정도 뒤 기사가 수정돼 인터넷 세상으로 유통되기 시작했고 나는 비로소 분노의 직장에서 벗어나 퇴근을 했다.



나의 구원, 부장은 전화를 걸어오더니 내게 고생했다는 다정한 얘기를 해줬다. 그는 칭찬도 빼먹지 않았다. 내가 빠른 시간에 기사를 수정한 것에 대해서 칭찬을 해줬다. 그렇게 나눈 대화는 고작 대여섯문장, 1분 정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내 몸에 쌓여있던 분노가 스르르 녹는 느낌을 받았다.


나의 부장. 그리고 나의 국장.


국장은 나를 분노로 밀어넣는다. 나는 그 분노에 빠져서 내 모든 존재를 다해 복수를 다짐한다. 복수가 내 생명의 원동력이 되는 것처럼 굴게 된다.


부장은 그 분노에서 나를 끌어올린다. 그는 분노로 존재가 부서져 가루가 되어가는 상태의 나를 끌어올려 단단한 흙에 세워 놓는다.


어떤 리더는 부하직원을 적으로 만들고 어떤 리더는 부하직원에게 존경을 받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상사에게 빡칠 땐 이정재 '보좌관'처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