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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잎 Aug 23. 2020

내 일과 내가 맞을까? 진로탐색 강의 듣다 현타가 왔다

지금, 나, 방향이라는 서울시에서 하는 진로탐색 프로그램을 들었다. 업무가 가지는 속성이 나랑 맞는지 체크하는 것인데, 중요한 것은 내가 했던 업무를 잘개잘개 쪼개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잘개 쪼개놓은 업무의 속성을 분석하고 어떤것을 내가 좋아하는지, 잘하는지, 싫어하는지, 못하는지를 나누고 나서 내가 일과 맞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내가 하는 기자일을 쪼개보았다. 맡은 분야의 기사를 전부 읽기, 단신 발제하기, 기획안 만들기. 기획안 발제하기, 기획안 수정하기, 전화 취재, 식사 취재, 기사 작성, 주가 보기, 전화받고 수정하기, 부서장한테 얘기 듣고 수정하기, 홍보팀과 미팅 약속잡기, 인터뷰이와 약속잡기, 인터뷰하기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내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예술형, 관습형, 탐구형, 사회형이었다. 

다른 매체에서 나온 기사를 읽는 것은 탐구형이다. 탐구형은 분석하고 생각하는 일이다. 기사를 읽고 현안을 파악하고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이유를 분석하는 것이다.

기사를 작성하고 기획안을 만들고 발제하는 것은 예술형이다. 이것은 정답이 없는 것이다. 정답이 없는 업무를 내가 알아서 해야하는 것이다. 

하지만 관습형이기도 하다. 기사쓰는 방식은 관습적으로 정해진 매뉴얼이 있기 때문이다. 몇월 며칠 누구에 따르면~ 라고 밝혔다. 누구누구 관계자는 이라고 말했다. 전망했다. 거래가 마감됐다. 분석됐다. 등등의 기사 쓰는 방식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관습형 업무이기도 하다. 

사람들을 만나서 취재하는것은 사회형이다. 단순 대응을 하는 것을 넘어서 관계를 쌓아나가는 것이 사회형이다. 이런 업무를 좋아하는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는 사람과 만남, 마음 나누기, 이해, 존중 등이고 이런 가치를 중시하기 때문에 이러한 업무가 잘 맞는다. 

내가 하는 업무의 속성과 나는 대체로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는 업무를 잘개 쪼갠 다음에 어떤 것을 내가 싫어하는지 살펴보니, 업무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업무가 아니라, 부서장이 기사를 빨리 쓰라고 재촉하는 일, 기사를 수정하라고 말하면서 심하게 갈구는 일, 기획안 발제를 까면서 갈구는 일, 다음날 기획안을 퇴근 시간이 넘어서까지 미리 내라고 하는 일을 싫어했다. 그리고 이 일을 하면서 큰 돈을 벌 수 없다는 사실, 이 일을 하면서 전문성이 쌓이지 않는다는 사실, 이 일을 통해 크게 출세하거나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싫어했다. 

이것은 업무 자체의 속성이라기보다는 업무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의 속성이었다.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들으면서 업무를 잘개 쪼개고 이들의 속성을 알아보고 내가 원하는 것과 맞는지 알아보는 방법을 배웠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업무를 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생각이 더 크게 들었다.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좋아도 상사, 일로 얻을 수 있는 수익, 발전 가능성이 좋지 않으면 일을 계속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업무를 하는 직장인에게는 좋은 수업이긴 하다. 내가 하는 일들로 내가 어떤 능력이 있는지, 어떤 성향과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왜 좋은 직장에 가야하는지를 더 뼈저리게 알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어떤 업무가 나와 맞는다는 것을 알았으면 그 업무를 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는 회사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그게 그 다음 스텝이다. 이 강의를 들으면서 어쩐지 더 허탈해지는 느낌이 들었고 매우 씁쓸했다.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 회사를 이토록 오래 다녔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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