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풀잎 Apr 03. 2019

남자에게 차인 경험은 오히려 자유다.

 남자한테 많이 차여본 사람인데 이 경험은 내게 매우 익숙하다. 맨 처음 차였을 때는 언제였나.


대학교에 입학자마자는 남자친구를 사귀게 됐다. 인생 첫 연애였는데 그 오빠는 뭔가 멋있었으며 나를 잘 챙겨줬다.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나를 옆에서 잘 보듬어줬다.


그러다가 고백을 받았는데 나는 그 사랑을 계속 의심했다. 그래서 갑자기 헤어지자고 하고 헤어졌다.


그 담에는 어떤 오빠를 좋아했다. 멀끔하고 키가 컸다. 눈이 살짝 쳐져서 인상이 선했다. 목소리는 매우 낮았고 과묵했다. 그래서 좋았다.


그 오빠한테 거의 매일 연락을 했고 자주 밥을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한테 딱 선을 그었는데 그때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아주 몇가지 사소한 경험들을 가지고서는 그것은 나를 좋아하는 이유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기타연주를 해준 것, 밥과 음료를 사준 것 등이 있었다.


그 당시 내게는 친했던 남사친이 있었는데 나를 아주 안쓰럽게 생각했다. 남사친은 내게 커피를 한잔 사주고서는 "내가 너한테 커피를 사주는 이유가 뭔지 알아?"라고 물었다.


 "그냥. 불쌍해서인가."라고 대답했고 그는 "그 이유랑 같다구. 그 오빠가 너한테 커피를 사줬던거랑 내가 사주는거랑. 의미부여 하지마."라고 말했다.


그리고 남사친의 조언을 듣고서 나는 그를 신뢰하게됐다.  남사친의 조언에 따라 나는 어느날을 딱 정해서 그날 고백을 했다. 그리고 차였다.


그것이 첫번째 차인 경험이었다.


내 남사친은 내 첫번째 차인 경험부터 그 이후에 무수히 많았던 연애의 흑역사를 죄다 알고 있다. 내게는 일기장같은 존재다. 그에게 내 얘기를 하면서 그라는 인간에 내 기록을 적어내려가는 느낌이랄까.


고백을 했다가 차였을 때 드는 느낌은 어떠한가 하면 자유로워지는 느낌이다. 차이게 되면서 이제 내게는 공식적으로 좋아하는 인간이 없게 된다.


어떤 곳을 가거나 어떤 음식을 먹을 때  사람과 함께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이제는 안하게 된다. 그리고 연락을 보내놓고 여러가지 가능성을 떠올리면서 기다림의 시간도 갖지 않게 된다. 정말 매우 자유로워지는거다. 


그리고 내 감정의 결론은 그 인간에게 쥐어져 있으니. 이 또한 자유롭다. "이제 공은 당신에게."이런 느낌처럼. 


마치 회사를 다닐때 골치 아픈일이 생기면 바로 상사에게 보고하는 것과 비슷하다. 내가 쓴 기사를 보고서는 누군가 지적을 하면 나는 책임을 바로 상사에게 떠넘긴다.


물론 혼나기는 하지만 나는  일에 보고를 했으니까 자유롭다. 내가 순간 순간 드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은 사실 자유로워지기 위한 방법이다. 어쩌면 매우 비겁한 방식이기도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끔은 자존감을 갉아 먹히는걸 즐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