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카나 1

by 티니Tini

토스카나 1



젊은 호스트 손에 이끌려 여성 전용으로 꾸며진 방에 들어섰다. 한 달 정도의 유럽 여행 중에 가장 따뜻한 느낌의 방이었다.


연초록색 인테리어에, 남향의 깨끗한 창, 2층 침대 사이에 놓인 넓은 계단, 그리고 침대 밑 서랍에는 자물쇠가 달려있었다.


섬세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캐리어를 침대 안쪽으로 밀어 두고 잠에 들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괜히 훔쳐 갈까 봐 더러운 캐리어를 거의 끌어안듯이 하고 잔 날이 몇 번 있었다.


짐을 내려 두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동네로 숙소를 잡은 탓에 거리는 고요했으며, 높이 솟은 사이프러스 나무만이 하늘의 풍경이 되었다.


높은 담장 위로 사이프러스 나무만이 보이는 집 앞 대문을 보며, 저 집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궁금했었다.


첫 유럽 여행을 앞두고 유럽 친구들에게 어느 도시를 좋아하는지를 자주 묻고 다녔었다.


많은 친구가 플로렌스라고 하였다. 공항에서 만난 어떤 아이 아빠도 플로렌스라고 하였다. 그게 피렌체의 영어 이름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유럽 여행 한 달 차였고 런던, 코펜하겐, 파리, 바르셀로나, 로마 등 중심 도시들을 이미 둘러본 터라 피렌체의 첫인상은 아쉽게도 그저 그랬다.


박물관-다리-성당의 루트만 몇 번을 반복하니 약간 지겨웠던 것 같기도 하다.


이번에는 새로운 것을 해보기로 했다.


현지 미용실에서 뉴욕에서는 자르지 못한 머리카락들을 잘라냈다. 이탈리아어가 안되고 영어가 안 되는 나와 미용사는 반쯤 영어와 반쯤 의성어로 소통하였다.


“두유 원 휘이이~(드라이기 소리 흉내)?”
“예쓰, 아이 원 휘이이.~”


그동안 미뤄왔던 염색도 하였다. 자연스러운 색을 원했는데 거품을 내고 머리를 말리고 나니 시꺼먼 색이 되었다.


바뀐 머리 스타일이 잘 어울린다며 엄지를 치켜주던 미용사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샴푸질은 너무 간지러웠던 기억이 있다.


이탈리아에 왔으니, 못하는 와인도 한잔해 보고 싶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덴마크 친구의 아버님은 “하루 한 잔의 와인은 건강에 좋지! 의사도 권한다니까! ” 라며 한 병을 마시곤 하셨다.


정처 없이 걷다가 미스터-로 시작하는 아마도 사장님의 이름을 딴 동네 식당으로 들어섰다. 카운터 위에 분필로 적어 둔 메뉴판에는 세트 메뉴 몇 종류가 있었는데 그중 레드 와인 한잔이 들어간 메뉴를 골랐다.


와인과 함께 우리나라로 치면 곱창구이 같은 음식이 나왔다. 올리브 오일에 페스토 정도로만 간을 했던 그 음식은 약간은 느끼했지만 따듯했고 지나고 보니 가끔 생각나는 음식이 되었다.


만약 다음에 피렌체에 간다면 그 식당을 들리지 않을까 싶다.


식당에서 나와, 거리의 작은 골동품 가게에 들어갔다. 사장님이 평생 모은 물건이라며 이것저것 여러 가지 물건을 보여주었다.


이탈리아에 갔는데 이탈리아어를 못하는 스스로가 약간은 미워졌다. 그래도 이탈리아어로, 영어로, 번역기를 써가며 우리는 꽤 대화다운 대화를 했다.


사장님 이름을 한글로 적어주고 나왔던 것 같다. 사장님이 어디 잘 걸어 둔다고 했는데 이제는 떼셨겠지. 이럴 줄 알았던 엄마 따라 캘리그래피라도 배울 걸 그랬다.


피렌체 온 거리를 이렇게 정처 없이 떠들다 마음이 내키는 곳이 있으면 문을 열고 들어가기를 계속했다. 피자 가게에서 작은 피자 한 판을 혼자 먹기도 하고 디저트 가게에 들러 비싼 쿠키 가격에 발걸음을 돌리기도 하였다.


두오모 성당 지붕이 보이는 약간은 허름한 카페에서는 준세이와 아오이를 궁금해했다.


유럽 여행 중에 그 도시가 떠오르는 책 몇 권을 읽었다. 암스테르담에서는 안네의 일기를 읽었고, 베를린에서는 독일 역사에 대한 짧은 글을 읽었고, 피렌체에서는 냉정과 열정 사이를 읽었다.


지금 와서 그 책들의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피렌체의 스터디 카페 같은 곳에서 준세이와 아오이가 만나기로 한 두오모 성당을 바라보며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조금 더 어렸을 때는 여행이 내 세계를 넓혀줄 거라고 기대했었다.


파리의 에펠탑이 나를 낭만으로,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대성당이 나를 역사 속으로 데려다줄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내 세계는 넓어졌을까. 박물관은 일주일에 한두 번만 보면 충분했고, 맛있는 디저트는 언제나 먹어도 좋았고, 모르는 사람들과 한 마디의 대화를 더 하고 싶어 기웃대는 것 정도.


“이거 가져가.”

“진짜요?”


아들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피렌체로 왔던 같은 방을 쓰던 스위스 여성분이 내게 50센트를 건네주었다.짐을 다 꾸리고 떠나기 전 버스비가 살짝 부족해 고민하던 터였다.

나는 그녀의 50센트를 가지고 어느 식당에 들러 종이 버스표를 샀다. 그리고 덕분에 베네치아로 다음 여행을 이어갔다.


아드님은 결혼식을 잘하셨을까? 베네치아에서 그녀를 몇 번 떠올렸다. 며칠간 저녁 시간에 들은 그분의 사랑 이야기도 상당해, 그 방을 쓰는 내내 설렜던 기억이 있다.


피렌체에서의 추억은 벌써 삼 년 전 이야기가 되었다. 나는 그 사이에 한국에서 일 년 반을, 라오스에서 일 년을 그리고 지금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일하고 있다.


겨울에서 봄이 넘어가는 이맘때 두 달 정도 떠났던 유럽 여행인지라 자꾸 마음이 들뜬다. 담장 너머로 봤던 그 집의 사이프러스 나무들은 아직도 잘 자라고 있겠지.


“두유 원 휘이이이”

“예스, 아이 원 휘이이이.”


휘이이, 얼른 다시 떠나야지 하고.

작가의 이전글Steal the show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