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언제나 고통스럽고, 인생은 원래 우울함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내 기억속의 나는 언제나 고통스럽고, 우울했으며, 자살사고가 끊이질 않았으니까.
매일같이 갈비뼈 사이사이로 내장이 쏟아지는 듯 한 불안을 느끼며 살았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20살에 과호흡이 왔을때도 그저 버티면 되는줄 알았다.
그때조차 병원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예민하면 과호흡이 올 수도 있지. 그렇게 생각했다.
야자와 아이의 만화 나나에서도 과호흡이 오는 캐릭터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으레 과호흡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올 수 있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렇게 망가지고, 망가지고, 망가져가며 23살이 되었다.
23살 가을 찾아온 우울함은 더 이상 내가 견딜 수 있는 강도가 아니었다.
나는 언니와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런데 왜일까. 그때는 나를 도와줄 사람으로 언니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역 근처에 앉아 그 끔찍한 자살충동을 견디며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울면서 전화를 건 내 첫마디는 “살려줘.”였다.
지금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다고. 살려달라고.
언니는 내게 무엇을 도와주면 되겠냐고 했다.
자퇴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언니와 엄마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른다.
자퇴는 내 생각보다 수월히 이루어졌다.
엄마는 나를 종교 심리치료 프로그램에 보냈다.
가난한 우리 집 사정에는 비쌌던 그 프로그램에서 나는 무기력에 누워만 있었다.
나는 내 우울이 더 이상 혼자서 견딜 수준이 아니라고 느꼈다.
종교 심리상담 센터에서 받은 심리결과지를 들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정신과를 혼자서 찾았다.
2012년에 받은 심리결과지의 결과가 어땠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결과지를 본 의사의 첫 반응은 기억한다.
“우울증이 많이 심하네요. 이 근처에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이 있어요. 소개해줄테니 입원을 하는게 어때요.”
내 상태가 많이 심각한가보다 생각했지만, 예민한 내가 타인과 함께 생활하는 입원실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 권유를 거절하고 처방약만 받아 나왔다.
집에와서 정신과 약을 먹고 누웠다.
효과는 꽤 바로 나왔다.
세상과 내가 분리되고 불안이 사라지던 그 느낌을 10년이 넘게 지난 아직도 기억한다.
약을 4개월정도 먹으니 기운이 났다.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정도로는 힘이 생겼다.
여전히 나는 고통스럽고 우울하지만, 늘 그래왔기 때문에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2013년 봄, 회사에 취업을 했다.
살아갈 힘이 있었다. 즐거운 모양으로 포장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세상은 고통스럽고 우울했다.
이쯤되니 화가나기 시작했다.
이 고통스럽고 우울한 세상에서 나를 죽여주는 사람이 왜 없냐는 분노에 휩쌓였다.
그 분노가 온당하지 않다는걸 스스로도 느꼈지만, 그렇다고 분노가 가라앉는건 아니었다.
그때까지도 의사의 처방은 초진때 처방한 약과 똑같은 약이었다.
내 내면에 분노가 이렇게 들끓는데, 누군가가 나를 해쳐주지 않으니 내가 타인을 해치고싶은 충동까지 올라오는데 똑같은 처방을 하는 의사를 보며 신뢰를 잃었다.
그래서 의사에게 입원 권유하려던 병원이 어딘지를 물었다.
의사가 왜 묻냐기에 알거없고 얘기나하라고 윽박을 질러 병원을 알아냈다.
그와중에도 나는 ‘개인병원 의사가 추천하는 개인병원이면 실력은 있을거다.’라고 판단할 수 있는 만큼의 정신회로는 작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빨리 치료받지 않으면 뉴스에 나올수도 있다는 사실 또한 알고있었다.
그 비이성적인 충동은 조절은 가능했지만 언젠가 조절이 안되는 순간이 오면 내 인생이 되돌릴수 없을만큼 망가질거라는 공포로 다가왔다.
그렇게 병원을 옮길 때 엄마가 따라왔다.
엄마와 함께 상담실에 들어갔고, 나는 첫 병원에서 보여줬던 심리검사 결과지를 두 번째 병원에서도 내밀었다.
엄마는 IMF시절부터 이야기를 풀어냈다.
나는 그 옆에서 쓸데없이 옛날얘기를 왜 하냐고 소리를 지르고 화를 냈다.
의사선생님은 환자분 때문에 상담이 안된다며 나를 진료실 밖으로 쫓아냈다.
그리고 다시 진료실로 불려들어가고, 의사선생님이 말했다.
“조울증입니다.”
내가 일반적인 우울증이 아니라는건 어렴풋이 알고있었다.
그래서 병원을 옮겼던거니까.
그래서일까, 조울증이라는 병명에 아, 역시 그냥 우울증은 아니네. 하고 생각했다.
조울증으로 진단된 환자들은 보통 부정을 한다는데, 나는 그냥 듣자마자 수긍했다.
의사선생님은 나에게 입원을 권유했지만 난 그때 막 회사에 취업한 상황이었고, 정신병원 입원해서 회사 못나온다고 하랴고, 입원은 하지 않을거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때 내게 타해충동이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게 비정상적인 생각이라는걸 알고있었고, 굳이 내 제정신이 아닌 생각을 이야기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입원을 피할 수 있었다.
2013년 봄, 난 드디어 평생에 걸친 내 고통과 우울함의 원인을 알게되었다.
조울증이라는 병때문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병원에 찾아갔을 때의 난 극조증이 온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