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족과 발병의 뿌리

by 팅커벨

1999년 3월.

IMF는 우리집도 무너트렸다.


샹들리에가 있던 집에서 좁고 낡은 집으로 이사한 날, 나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예전 집으로 다시 가자고, 여기 싫다고 떼를 썼다.


돌아온 반응은 “너만 힘들어? 지금 다 힘들어!”였다.

그 말은 내게 있어서 단순히 울지 말라는 말이 아니었다.

‘네가 중심을 잡지 않으면 이 가정은 무너져.’

열 살의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날 이후로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게 되었다.

말 대신, 고통은 몸으로 나타났다.

나는 신체화로 매일같이 열이나고 토를 했다.

그 아픈 와중에도 4살 남동생을 하원시키고 챙기는 일은 내 몫이었다.


집이 망하자 청소년기였던 언니는 날 정서적으로 학대하기 시작했다.

톱날이 달린 플라스틱으로 손목을 긋는 걸 내 앞에서 보여줬다.

나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런 걸로는 안 죽어.”

그 이후 언니는 날 감정 쓰레기통처럼 대했다.


내 우울과 불안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아직은 조울이 아닌, 깊고 장기적인 우울증의 형태였다.


12살.

아버지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동생이 뱃속에 있을 때부터였으니, 6년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날, 나는 급성 이하선염으로 응급실에 실려갔다.


13살.

사소한 일로 언니와 다퉜고, 언니가 내 뺨을 때렸다.

온 힘을 다해 잡고있던 이성이 끊겼다.

나는 언니의 휴대폰을 부수고, 언니를 때렸다.

한 번 해보니 별거 아니었다.

그 후로 언니가 나를 조금만 건드려도 손부터 나갔다.


그게 조울증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그 격렬한 폭발은 집에만 머물지 않았다.

학교에 가서도 매일같이 친구들과 싸웠고, 중학교를 졸업할 때 나는 왕따였다.


16살.

중학교때도 여전히 신체화가 심해서 양호실을 자주 드나들었었다.

하루는 양호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너희 집 형편이 좋지 않고, 친구들과의 사이도 좋지 않다고 들었다고.

그러면서 정신과 진료를 권유하셨다.

이 세상에 미치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미친 사람은 아니라며, 쌓이고 쌓이다 폭발하면 미친사람이 되는거라고 했다.

나는 양호선생님의 말을 무시했다.


고등학교는 실업계로 진학했다.

집은 가난했고, 난 똑똑하지만 인문계에서 독학으로 좋은 대학교를 갈 만큼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특별전형으로 대학을 가기 위해선 실업계로 가야만 했다.


중학교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학력고사를 망쳐도 인문계를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실업계를 선택했고, 부모님은 완강히 반대했다.

한 달을 싸워 실업계 진학을 쟁취했다.


중학교때도 우리 부모님은 성적표에서 늘 화낼 구실을 찾았었다.

등수가 올라도 평균이 낮으면 평균으로, 평균이 올라도 등수가 낮으면 등수로, 둘다 올라가면 “몇개만 더 맞았으면”이라며 내 성적표를 비난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그런 집안에서 실업계 진학 후 나는 ‘문제아’가 되었다.

대학 합격장을 받아들기 전까지, 나는 집에서 식모취급을 받았다.


그럼에도 꿈은 있었다.

IMF 이후 바닥난 자존감 속, 마지막 희망은 대학교 브랜드였다.

좋은 대학에 붙으면 내 가치도 회복될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진짜 계획이 있었다.

좋은 대학에 붙으면, 그걸 마지막으로 세상을 등지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만큼 나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우울과 고통 속에 매일을 버티며 살고 있었다.


가족에게 공부한다는 사실을 알리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성적표를 보여주지 않았고, 놀러 나가는 척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미 조울증이 진행된 상태라 집중 시간도 짧았지만 그때의 나는 나 자신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합격했다.

학교엔 내가 합격한 대학교의 이름과 내 이름이 적힌 플랜카드가 걸렸다.

죽을 계획은… 무서워서 실행하지 못했다,


합격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고모에게 전화가 왔다.

“너 ○○대 붙었다며? 축하해.”

그 얘기를 들은 내 감정은 기쁨이 아닌 역겨움이었다.


내 선택을 무시하고 나를 무시했던 부모가 내 합격 사실을 자랑거리로 삼았다는게 견딜 수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부모님에 대한 명백한 혐오가 생겼다.


그리고, 나는 그 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

실업계 출신인 내가 수업을 따라갈 수 없을거란 이유, 등록금이 부담된다는 이유였다.

내 노력의 결과는 부모님의 트로피로 쓰이고, 내 손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구나.

그 후 나는 더 이상 노력하지 않았다.

놀러 나가는 척 도서관에 가던 과거의 나는 사라졌고, 진짜로 무너졌다.

부모에게 할 수 있는 복수는 내가 철저히 망가지는 것뿐이라고, 그땐 그렇게 믿었었다.


20대.

그렇게 내 조울증은, 이전보다 훨씬 큰 진폭과 위험성을 띠며 1형 환자 수준으로 격화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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