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려서부터 식탐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늘 비교적 마른 체중을 유지하였으며, 살이 잘 안 찌는 체질이라 믿었다.
입시가 끝난 고3의 끝자락에 있던 나는 다이어트에 도전하게 된다. 3kg 감량을 목표로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을 병행했다. 노력에 비례해서 몸무게가 줄어드는 것을 수치적으로 확인하며 성취감과 재미를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혼자 있던 나는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케이크 한 조각, 과자 한 봉지, 그리고 몇 개의 젤리를 한꺼번에 먹어버리고 만다. 어떻게 보면 사소한 일이었지만, 그 당시의 나는 정말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절망 속에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소화가 되기 전에 음식을 도로 토하는 것이었다.
목에 손을 넣어 가까스로 음식을 다 토해낸 후에야 안도감을 느꼈다.
그 후로, 먹고 토하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어차피 토할 거라는 생각에 음식이 턱까지 차도록 폭식을 하기도 했다.
사실 배고픔보다는 공허함을 참지 못했던 것 같다. 마음의 허함을 달래기 위해 나는 음식을 입에 욱여넣었고, 침대에서 폭식을 하고 토하러 화장실에 갈 기력이 없어 그대로 누워있다가 그냥 잠드는 일도 빈번했다. 음식을 입에 넣은 채로 잠에 들기도 했는데, 깨어나면 몸을 웅크린 채 음식을 다시 씹어 넘겼다.
몸 곳곳에는 튼 살이 생겼고, 건강하지 않은 음식 섭취로 인해 피부가 뒤집어졌다. 내 몸에 남은 모든 흔적들을 보고 있자니 나의 잘못이 낙인으로 새겨진 것 같았다.
자신의 욕구를 통제하지 못하는 돼지가 되어버린 것 같아 스스로가 혐오스러웠지만 문제 행동이 쉽게 고쳐지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