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다녀온 아이들이 어느 책에선가 불기둥을 만드는 실험을 봤다고, 해보겠다고 난리다.
종이컵과 밀가루, 빨대, 촛불만 있으면 된다고 엄마 앞에서 사정을 한다.
허락을 해주면 그 이후 벌어질 난장판이 예고편처럼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아이들이 순수한 열정으로, 흥분된 목소리로,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면 그만 그 눈빛에 나도 설레어져서
"그래 해보자!" 고 말해버리고 만다.
슈퍼에 가서 종이컵을 사오고 밀가루를 담아 빨대를 꽂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주변에 종이같이 탈만한 것들은 다 치워놓고 초를 켰다.
촛불을 앞에 놓고 종이컵에 든 밀가루를 빨대를 통해 훅 불었다.
우와!!!!
불꽃이 화르르 일어났다! 꼭 용이 내뿜는 불같았다!
아이들은 흥분했고 사진을 찍자며 다시 세팅을 했다.
동영상 촬영을 해보더니 재밌다며 또 다른 제안을 한다.
찰흙으로 조그맣게 마을을 만들고 불타는 장면을 찍겠단다.
그러니까... 재난영화를 찍겠다는 거지.....;;
그리고 이후 30분째
찰흙으로 일종의 세트장을 만들고 즉석으로 탄생한 대본을 가지고 대사도 치고 음향효과도 넣고 불도 질러가며 영화를 찍고 있다. 아주 신나서 죽는다.....!!
우리 아이들은 아주 긴 어린시절을 보내고 있다.
이미 어른의 눈빛을 하고 세상살이에 밝아진 다른 친구들이 볼 땐 너무 순진하고 어린 아이들이다.
다른 어른들도 걱정하듯 말하길, 이렇게 순진하기만 해서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겠냐고 한다.
너도나도 앞다투어 아이들을 빨리 어른이 되게 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은 늦되고 있다.
자기것을 챙기고 처세에 능하며 눈빛이 생기없이 탁해지는 것이 어른이 되는 것이라면 우리 아이들은 늦다.
늦어도 한참 늦다.
하지만 어른이 되는 것이 자기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이고, 하고싶은 것이 아니라 해야할 일을 하는 것이라면....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배려하고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라면.....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은 어른에 훨씬 가까이 서 있다.
늦되고 있는 아이들.....
부족함 많은 아이들이지만 어린 시절이 어린시절로 보호되고 어른이 되길 강요받지 않는다면 누구보다도 멋진 어른이 될거라고 믿고 있다. 어쩌면 순진한 엄마가 여전히 철이 없어서 하는 생각일까?
아이들이 제단의 불이 꺼지고 있다며 '안돼!!'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러더니 제단의 불을 옮겨 옆에 선 찰흙 사람의 손에 휏불로 들려주었다.
얼굴도 없는 사람이었는데 왠지 힘있어보이고 멋졌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감탄사를 연발했다.
속으론 딴 생각을 하면서...
저 밀가루는 어떻게 치우나....
찰흙은 또 어쩌고....
저 초가 얼마짜린데.... 다 녹았네...
어른들 없을 때 하면 안돼는데.... 단단히 당부해야지!
소방교육도 단단히 시켜야겠다.....!!
그래... 그래도 역시 난 엄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