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2002]【11】해몽

넌 감동이었어

by 짜근별

2002.10.11 악몽


악몽에 시달렸다.

참...

태어나서 한 편의 추리소설을 꿈으로 꿔 보긴 처음인 듯하다.
떠오르는 단편의 기억을 모아 꿈 속을 다시 헤짚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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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사건이다.
피해자는 여자였고,
불행히도 용의자는 '나'였다.
하지만 난 내가 범인인지 아닌지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
(꿈속에서 가끔씩 만나는 상황이긴 하다… 나에 대한 정체성을 상실한 채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경우…)

죽은 사람과의 관계는 생각이 나는데,
그리고 내게는 충분한 동기가 있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그리고 남겨진 일련의 단서와 정황들 속에서
내가 범인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정작 나 스스로는 내가 그러지 않았다는 생각만 가득하다.

그러곤
희미하게 살아나는 의식 속에서 잠을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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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꿈을 꾸고 나면 정신이 혼란스럽다.

꿈에는 일정한 모티브가 있다고 하는데
도대체 이 꿈 속에는 현재의 내 상황에서 이끌어 낼 수 있는 유추가 아무것두 없다...

기압 한 번 넣고

산란한 정신을 다시 가다듬는다.


꿈은 '무의식이 우리에게 말을 거는 것'이라고 한다.


살인사건, 이건 아마도 그당시 하고 있던 일들이 그만큼 나에게는 무겁고 중요한 일로 느껴졌기 때문일 것인 것 같고, 무엇하나 확실하지 않았던 상황은 그 자체로 불확실성이 엄청나게 컸다는 것을 나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꿈을 잘 꾸지 않는다. 그래서 더 특별했던 꿈.

나에게는 꿈에 대한 몇 가지 사소한 일화들이 있는데,


먼저 남자들이 가장 많이 꾸는 꿈 - 제대 후 입영영장 받고 다시 끌려가는 꿈.

나도 물론 꿨다. 그것도 여러 번.

이것만큼 한국에서 군대가 남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잘 보여 주는 것은 없다.


그리고 신혼 때 몇 번이나 꿨던 꿈.

다른 친구들은 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있는데, 나만 결혼 못해서 힘들어하던 꿈.

아마도 과거 관계에 대한 미련이나 그리움 때문이 아니었을지.

깨어서 옆에 있던 아내를 보고 내심 안도하고 나를 구원(?)해 준 것을 고마워했던 기억.

이 꿈은 첫째아이가 태어나자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은 내 할머니와 관련된 꿈.

같이 사시던 할머니가 갑자기 위독해지셔서 집안 어르신들이 상의한 끝에 내 중학교 졸업식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어느 날 오랫동안 사셨던 시골집으로 내려가시게 되었다. 내 고향 시골집 옆에 할머니 친구분이 사셨는데, 할머니 의식이 없던 어느 날 그분이 우리 집에 찾아와서 아버지께 말씀하셨다.


"어제밤 꿈에 너희 어머니가 나타나셔서 '나 오늘 가네'라고 말씀하셨네"


그날 저녁 늦게 우리 할머니는 우리 곁을 떠나셨다.



2002.10.20 넌 감동이었어


'미련하게 아무도 모를것 같아~~
태연한 척 지내왔어 너 떠나버린뒤~~'

아침에 버스를 막 내리려는데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는 노래에
귀가 쫑긋해졌다.

그리곤 그때 느낀 왠지 모를 감정에 휩싸여
그냥 나도 모르게 하루 종일 그 노래를 흥얼거렸다.

유난히 음악에 대한 편식이 심한 나라서
아는 노래가 별로 없는 지금으로서는
알고 있는 노래가 흘러나오자 그냥
무의식이 나의 의식을 지배하는 것 같다.

언젠가 중,고등학교때
음악듣으면서 공부하기를 좋아했었던 때가 있었는데
시험 전날 공부하면서 밤새 들었던 노래를
시험 보면서도 계속 웅얼거려서 제대로 시험을 볼 수 없을 정도였던 적이 생각난다.

문득 거리를 지나다 보면 평소 그냥 지나치던 음악도
왠지 모를 분위기에 취해 신나게 혹은 감명 깊게 느껴지기도 한다.

분위기에 마음을 맡길 수 있다는거
그게 인간인 것 같다.


사람들에게는 노래에 박제된 기억들이 있다.

어떤 노래를 들으면 인생의 어떤 순간이 떠오르는 그런 기억.

나에게도 그런 노래들이 있다.


UP의 '뿌요뿌요': 논산 훈련소에서 신병 교육 마치고 전남 장성으로 후반기 교육 받으러 가기 위해 기다리던 기차 플랫폼에서 흘러나오던 노래.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사회와 단절돼 있다가 느꼈던 자유의 향기가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온다.


성시경 '넌 감동이었어': 첫사랑의 그림자


박정현 '편지할게요': 날 좋아했던 여인이 연애편지와 함께 건네주었던 앨범.


사람의 추억은 그렇게 귀로 기억된다.



2002.10.21 캠퍼스의 가을

왜 학교 다닐 땐 이렇게 학교가 예쁜 줄 몰랐을까?
가로등빛을 타고 나풀거리며 떨어지는 낙엽 너머로
어스름 가을 저녁 하늘에 선홍색으로 짙게 물든 구름이 펼쳐져 있다.

반쯤 옷을 벗어버린 나무가지는
지나가는 바람의 질문에 화답하듯 고개를 연신 끄덕이고
가볍게 잡은 두손에
사랑 한가득 담고 천천히 걸어가는
연인들의 뒷모습에서
벤취 위에 무릎을 두팔로 감싸 안고
턱을 사이에 대고 앉아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들이쉬어
만추(滿秋)의 여유를 담아본다.

2002년 가을도 그렇게 가고 있었다.



(계속)


*이 글을 읽기 전에 첫 번째 '프롤로그'를 읽으세요.


[이별後愛] - 눈부시도록 찬란했던 하지만 처절하게 가슴시렸던 첫사랑과의 만남과 이별

[응답하라2002] - 간절했던 꿈을 향한 유학도전기와 X세대 친구들의 20대시절 고민과 만나는 추억 여행

[삶, 사람, 사랑] 유학, 이민 생활 동안 떠오르던 단상과 고민들 그 일상 나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