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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전후

일본인 스승과 한국인 교사, 와이로의 깊은 뿌리

by 송종문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 초 나의 아버지는 시골에 있는 면 단위의 보통학교 졸업반이었다.

당시에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학교는 사범학교였다. 사범학교를 마치고 교사가 되면 조선인으로서는 극히 드문 국가 공무원이 될 수 있었다.
"교사는 순사처럼 칼도 차고 모자에 금테도 둘렀지. 그때는 그게 정말 멋있어 보였어.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서당 훈장님한테도 스승이라고 깍듯했는데, 조선총독부에서 그렇게 학교 선생한테 권위를 심어주니까 높은 벼슬아치로 보였지."

게다가 학비 무료에 기숙사가 제공되어 가난한 시골학생에게는 상급학교 진학의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다. 보통 전교 1등에게는 학교에서 사범학교 추천장을 써주었고, 아버지의 성적이 뛰어났기 때문에 은근히 기대했지만 추천장은 성적이 낮은 다른 학생에게 돌아갔다. 아버지는 수십 년 후에도 분개했다.

"그 아비가 돈이 좀 있었거든. 한국인 선생에게 '와이로'(뇌물)를 먹인 모양이더라고. 일본인 선생은 안 그랬는데 한국인 선생은 와이로 꽤나 밝혔지"
추천장을 받은 학생은 시험에 떨어져 결국 사범학교에 가지 못했다.

그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준 사람은 일본인 교사였다. 그 선생은 아버지의 어려운 가정형편을 알고는 철도고등학교(입학당시 이름은 중앙철도종사원 양성소)에 추천장을 써주었다. 철도고등학교를 나오면 철도국 직원으로 채용됐는데 어쨌든 공무원이었고, 무엇보다 좋은 점은 전교생이 모두 학비가 면제되는 관비생으로써 기숙사에 수용되고, 과정에 따라 학자금 대여를 받거나 소정의 급료를 받기까지 했다. 가난한 시골학생으로서는 공짜로 몇 년간 서울 유학을 할 수 있는 최상의 기회였다. 무사히 철도고등학교에 합격한 아버지는 평생 그 일본인 교사에게 고마워하셨다.

"그분이 그런 줄 알았으면 더 잘해드릴걸... 사실 그 선생님이 관사 앞 연못에 키우던 물고기를 내가 몰래 잡아먹은 적도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모진 짓을 많이 했지만, 직접 겪어보니 상당수 평범한 일본사람들은 원칙에 충실하고 양심적이었어. "

KakaoTalk_20241003_182227728.jpg 1946년 철도고등학교(당시엔 중앙교통종사원양성소) 졸업사진

갑작스러운 광복으로 온 나라가 혼란기에 빠져든 가운데 철도고등학교도 일본인 학생과 교사들이 떠나는 등 어수선해지면서 광복절 이튿날인 1945년 8월 16일부터 잠깐 휴교상태에 들어갔다가 45년 10월 1일부터 남아있는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재개했다. 아버지는 해방 이듬해인 46년 3월 무사히 철도고등학교를 마칠 수 있었다.



[나의 생각 1] 와이로(わいろ)는 뇌물을 뜻하는 일본어로, 요즘 젊은 세대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겠지만 20세기를 살았던 한국인에게 '와이로'는 아주 흔히 쓰이던 말이다. 비슷한 말로는 ‘사바사바’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고등어/청어(さば, 사바)를 순사에게 뇌물로 주어 일을 해결한 데서 나왔다는 설도 있고, 일본말의 관용어인 '사바오 요무'(鯖を読む, 고등어를 세다-고등어 마릿수를 속여 부당 이득을 취하다)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청어 뇌물설에 대해서는 명확한 인명과 년도까지 내건 일화를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얼마 전까지도 공무원을 상대하는 일에는 와이로가 필수라고 여기는 분위기였고, 와이로로 가장 심각하게 오염된 곳 중의 하나가 어이없게도 교육계였다.(책 뒷부분 '학창 시절 와이로의 추억' 편에서 다시 한번 나온다)

교사에 대한 한국인의 와이로 풍습은 미국에서까지 여전하다. 잘 아는 분이 10여 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쿠퍼티노에 살았는데, 그곳은 애플 본사가 있는 실리콘 밸리의 중심지여서 IT업계에 종사하는 한국인 주민도 꽤 많은 지역이었다.

"쿠퍼티노로 이사 와서 애들을 전학시킨 다음에 교사 면담을 했지요. 미국인 선생님이 영어로 대화 도중 갑자기 김치 만들 줄 아냐고 묻는 거예요. 엥? 웬 김치?라고 생각했는데, 교사 말이 한국인 엄마들이 올 때마다 하도 김치를 싸가지고 와서 먹다 보니 김치에 중독됐다더군요. 지내다 보니 한국인 엄마들은 상당수가 자기애들의 담임교사를 과외선생으로 두고 있더라고요. 그래서인가 쿠퍼티노가 생활비가 비싼 지역인데도 박봉인 교사들의 선호지역이 됐대요. 부수입이 워낙 많아서... 저도 선생님 만날 때마다 열심히 김치 싸가요."

사실 미국에서는 교사가 선생님의 날이나 자기 생일에 학부모에게 선물을 대놓고 요구하는 일도 종종 있고, 담임을 맡은 학생의 과외교습을 시켜주고 돈을 받는 것도 불법이 아니다. 그러나 수시로 선물을 싸 가고, 남들보다 더 많은 과외비를 주려는 한국 학부모의 마음속에는 '와이로'의 효과에 대한 기대가 숨어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결국에는 미국의 교육계까지 와이로로 오염시키지 않을까?


[나의 생각 2] 와이로는 한자어 賄賂를 일본 발음으로 읽은 것이다. 일본에서 발간된 일본어 사전에도 <わいろ【賄賂】자신의 이익이 되려고 하는 등 부정한 목적으로 주는 금품>이라고 명시돼 있다. 국립국어원에서도 1997년 국어순화용어자료집에서 일본어인 '와이로'를 버리고 다듬은 말인 ‘뇌물’만 쓰도록 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와이로가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우리말이라는 '썰'이 퍼지기 시작했다.


옛날, 까마귀가 노래를 잘하는 꾀꼬리에게 내기를 걸고 노래시합을 하자고 했다. 사흘 뒤로 시합 날짜가 정해졌는데 까마귀는 노래 연습은 안 하고 개구리만 잡으러 다녔다. 약속한 날이 되어 백로를 심판으로 세우고 꾀꼬리와 까마귀가 노래를 한 곡씩 불렀는데 백로는 엉뚱하게도 까마귀의 손을 들어주었다. 알고 보니 까마귀가 백로에게 개구리를 잡아다 주고, 자기편을 들어 달라고 청탁을 했던 것이다. 그 후 꾀꼬리는 크게 낙담하고 실의에 빠졌다.
고려 후기의 유명한 문인인 이규보는 뇌물을 갖다 바친 자만 과거에 급제할 수 있는 부정부패를 한탄해 "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다(유아무와 인생지한, 有我無蛙 人生之恨)"라는 글을 대문 앞에 붙여 놓았다고 한다. 거기에서 ‘개구리 와(蛙)’, ‘이로울 이(利)’, ‘백로 로(鷺)’를 합쳐 ‘와이로’(蛙利鷺)란 말이 생겨났다는 것.


그러나 와리로가 와이로가 된 경위도 알 수 없거니와, 저 설화의 원래 심판 역은 백로가 아닌 늙은 호랑이였다고 한다. 인터넷과 이메일, SNS를 타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급격하게 확산되면서 생겨난 '썰'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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