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사태는 은밀히 다가오지 않았다. 은밀히 감춰졌을 뿐
보도국에서는 1996년 연말부터 <뉴스 9>에서 '경제를 살립시다'라는 주제의 뉴스를 시리즈로 방송했다. 기울어가는 경제를 살리자는 내용으로, 기술 개발 열심히 하자, 해외여행 자제하자 뭐 이런 것들이었다.
1997년 1월이 되자 위기의 징후는 좀 더 뚜렷해졌고, 일부 민간 연구소에서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가며 외환위기를 경고하는 보고서를 냈다. 그런 내용을 정리해 리포트를 하나 만들었는데 데스킹 단계에서부터 껄끄러웠다. 예를 들어 "현 정부 들어 4년간 외채가 2.4배 늘었다"는 표현은 "92년(말) 428억 달러였던 외채가 2.4배 늘었다"로 바꿔야 했다. YS 정부가 잘못했다는 느낌을 주기는 싫어서였던 듯. 이런저런 수정을 거쳐 리포트는 제작됐으나 방송되지는 못했다. 부장은 아예 편집회의에 올리지도 않았다. 그 테이프가 내 책상 서랍 속에서 묵어 자빠진 지 20 일가량 된 97년 2월 13일 저녁, 8시 50분쯤 <9시 뉴스 편집부> 기자가 헐레벌떡 경제부로 뛰어왔다.
"오늘 '경제를 살립시다' 시리즈로 나가기로 한 리포트가 펑크 났는데 경제위기나 뭐 이런 거 만들어 놓은 거 없어?"
그날따라 부장과 차장이 일찍 퇴근해서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내가 얼른 서랍 속에 묵혀두었던 테이프를 꺼내 주었다.
"마침 하나 만들어 둔 거 있어요"
그래서 그 리포트는 편집부의 별다른 데스킹 절차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방송될 수 있었다.
그 리포트에 대한 사내 반응은 별로 좋지 못했다.
"아니 우리나라를 왜 멕시코 같은 나라랑 비교하나?"('멕시코는 엄청난 외채 때문에 파탄을 맞으면서 10년 동안의 경제성장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렸다'는 문장이 거슬린 분이 계셨나 보다.)
"멕시코가 우리보다 2년 먼저 OECD 가입한 나라인데요? 그랬다가 1년 만에 부도났지만"
사실 멕시코가 1994년에 OECD에 가입했다가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투기자본이 몽땅 빠져나가 국가부도를 맞은 과정은 우리 외환위기 과정과 아주 흡사했는데, 그 당시엔 멕시코는 후진국이고 우린 선진국이라는 착각이 흔했다.
상당수의 시민들은 외환위기의 징후가 동남아 국가들의 부도 위기가 터진 97년 하반기쯤부터 드러나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정부 내에서도 일찍이 위기를 감지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
1997년 3월에 정부의 경제 싱크탱크인 KDI(한국개발연구원)는 외환위기 가능성을 경고하는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이런 내용이 시중에 퍼지는 걸 못마땅해하는 강경식 경제부총리의 눈치를 보느라 강 장관이 홍콩 출장 중일 때 배포했는데, 강 장관이 이를 알고 홍콩에서 노발대발하는 바람에 해당 보고서를 다시 회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정권이 바뀌자 외환위기를 초래한 자들을 찾아내 처벌하라는 분노가 들끓었고, 우리 회사도 국회 등에서 "나라가 다 망해가는데 국민에게 위험을 알려야 할 KBS는 뭐 했냐!"는 추궁을 당하는 처지가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 비서실에서 전화가 왔다.
"송 기자, IMF 사태 터지기 전에 외환 위기 경고하는 리포트 한 적 있지? 그게 언제였지?"
"네, 2월 13일입니다."
"오, 꽤 일찍 했었네. 좋아, 그거 원고하고 리포트 테이프 좀 사장 비서실로 갖다 줘"
나중에 그 테이프가 국회에 제출됐다고 들었는데 사장님의 면피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는 모르겠다.
[관련 역사] 1996년 12월 12일, 우리나라는 29번째 OECD 회원국이 되었다. 당시에 반도체가격이 폭락하고, 국제수지 적자가 몇 년째 커지는 상황에서 급작스러운 개방이 금융시장을 흔들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YS는 '임기 중에 선진국 진입'이라는 명분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고 한다.
외환위기의 원인으로 기업들의 과도한 부채를 많이 들지만 외환 자유화 바람을 타고 외화 돈놀이에 몰두한 금융기관의 책임도 크다. 1993년 한국 정부는 금융기관의 해외지사에 단기차입을 허용함으로써 단기 외채 도입의 ‘뒷문’을 열어주었다. 그걸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은 종합금융사('종금사', 대개 OO종합금융이라는 이름의 회사)들이었다.
종금사는 명동 사채시장의 사채업자들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만든 단기금융회사('단자사', 대개 OO투자금융이라는 이름의 회사)에서 탈바꿈한 회사들이 다수를 차지했는데 외화 차입이 허용되자 일본에서 싼 이자로 돈을 빌려 동남아나 국내 기업에 고금리로 빌려주는 장사를 했다. 통상적으로 선진국일수록, 단기 자금일수록 이자율이 낮고, 후진국일수록, 장기 자금일수록 이자율이 높다. 그러니 선진국에서 단기로 빌려 후진국에 장기로 대출해 주면 차입이자의 몇 배나 되는 대출 이자를 받을 수 있었다. 업계에서는 '돈을 쓸어 담는다'는 말이 돌 정도로 몇 년간 짭짤한 차익을 얻었다.
그런 상황에서 1997년 여름 일본 은행들이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단기로 빌린 돈은 갚으라고 독촉하는데, 장기로 빌려준 돈은 회수할 길이 막막한 터에, 하반기 들어서는 동남아 국가들이 외환위기가 본격화 됐다. 7월에는 투기자본의 바트화 공격을 견디다 못한 태국에서 고정환율을 포기하면서 바트화가 하루에 19.6%나 폭락하기도 했다. 이자보다 환차손이 더 커졌고, 그나마 국가부도가 이어지니 받을 길도 막막했다. 국내에서 계열사나 시장을 통해 외화 빚을 메꾸려고 발버둥치다보니 그나마 간당간당하던 외환보유고를 더욱 소진시켰다.
97년 말 30개에 이르던 종합금융사는 98년에 16개 사가 부실로 퇴출되며 '외환위기를 초래한 주범' 중 하나가 됐다.
[참조 자료] 당시 리포트의 원고는 다음과 같다.
앵커 :
우리나라가 외국에 빚진 돈 즉 총외채가 천억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때문에 외채 위기론이 제기되고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이렇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외채를 적절하게 관리하지 못하면 경제성장이라든지 경제안정은 공염불에 불과하고 맙니다.
OOO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
우리나라의 총외채가 지난해말 사상 처음으로 천억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92년 428억 달러였던 외채가 4년 만에 2.4배로 불어난 것입니다. 외채의 양이 늘었을 뿐 아니라 질까지 나빠져 1년 이내에 갚아야 하는 단기 부채가 전체의 59%를 차지하게 됐습니다. 투기성 자금인 핫머니나 빚을 메꾸려고 또 빚을 얻는 악성부채가 크게 늘었기 때문입니다. 이자도 눈덩이처럼 불어 올해 경상수지 적자 전망치 140억 달러의 절반인 70억 달러는 외채 이자 때문에 생기는 적자입니다. 총외채 1,020억 달러를 인구수로 나누면 한 사람당 197만 원이나 됩니다. 나는 외국돈 쓴 적 없다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식량이나 에너지를 대부분 수입해야만 하고 지하철 등 각종 사회간접자본을 외국빚으로 지은 나라에서 외채는 나와 남을 따질 일이 아닙니다.
양두용 (현대경제사회연구원 연구원) :
각 개인이 빚을 진 게 아니더라도 정부가 외국돈을 빌렸을 경우에 세금이 오를 수 있고 기업이 외국돈을 빌렸을 경우 그 외국돈을 갚지 못해서 도산하는 경우 실업률이 오를 수 있고 결국 외채라는 것은 국민 모두의 부담입니다.
기자 :
지난 94년 멕시코는 엄청난 외채 때문에 파탄을 맞으면서 10년 동안의 경제성장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렸고 물가는 몇 달 새 35%나 뛰었습니다. 외채를 적절히 관리하지 못하면 성장도 물가안정도 다 소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KBS 뉴스, OOO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