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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Apr 06. 2020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프롤로그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집 앞을 나서면 보이는 장소들은 한결같았다.

양 옆의 가게들이 허물어지고 
다시 세워짐을 반복하는 동안  
같은 모습으로 자리를 지켜줬던 장소들.
진흥 슈퍼, 머리사랑, 두부나라, 영화마을 같은 
가게들. 그 안의 사람들과 함께 자랐던 내 시간들.

“다 헐린대 재개발 때문에”라는 엄마의 말에 
불쑥 올라왔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명확한 단어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놀라서, "왜? 진짜? 정말?" 같은 말들만 반복했는데 엄마는 뭐 그리 호들갑이냐는 반응이었다.

늦은 밤, 남동생과 산책하다 그 건물들 앞에서 
재개발 얘기를 꺼냈고, 동생은 미간을 찌푸리며, “아-“ 하는 탄식의 숨을 뱉었다.

그 탄식 안에는 우리의 생활 속에 
당연스레 존재했던 것들이 허물어지는 
헛헛함이 있었다.

동생과 나는 대화 속에 연신 아- 하고 뱉으면서
벌써부터 눈앞의 건물들이 사라진 것만 같은 
허전함을 느꼈다.



벌써 머리사랑은, 가게 안의 모든 것이 
사라져 있는 상태다.

사장님은 남동생 친구의 어머니로,
문을 열고 들어가면 늘
"어- 오랜만에 왔네. 뭐 하려구요?"
라는 말로 맞아주셨다.

대부분 생활을 서울에서 해서,
자주 가진 못했지만
가끔 충동적으로 머리에 변화를 주고 싶을 때의 
내 선택은 무조건 머리 사랑이었다.
항상 설레는 마음으로, 저 문을 열었다.

서울의 미용실에 가면 
약간은 긴장한 채로 앉아있게 되는데,
저기서는 정적이 흘러도 
마음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있었다.
티비쪽으로 의자를 돌려주셔서 그랬나-

아줌마가 보던 드라마를 함께 보며
드라마 내용이나 연기에 대한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그 오랜 시간, 나에게 존댓말을 쓰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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