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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나무 Apr 06. 2020

비디오 가게


가끔 9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한국 영화들을 보면 나는 마치 그때가 가장 좋았던 시절인 것만 같다.

비디오 가게가 즐비했고, 동네 아줌마들은 대부분 일을 안 다니셔서 서로의 집에 모여 삼삼오오 수다를 떠시곤 했다.



이웃집에 들어가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지금, 그때를 떠올려 보면 허구한 날 옆집에서, 저기 윗집에서 같이 놀았던 기억이 생경하기도 하다. 그때는 낮에 뒷산도 많이 다니고 여름밤이면 친했던 동네 분들과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산책을 가기도 했다. 하교 후에는 늘 동네 아이들과 아파트 안의 아스팔트 땅에 분필로 그려서 땅따먹기나 이름이 기억 안 나는 놀이들을 어두워질 때까지 하거나 만화책을 빌려봤다.



인색하고 무정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시기-

놀이터에서 또래를 만나 몇 시간만 같이 놀아도 절친해질 수 있었던 천진했던 날들.



90년대 후반. 초등학생일 때부터, 영화나 드라마 보는 걸 좋아했다. 4학년 때 ‘이브의 모든 것’이라는 드라마를 너무 좋아해서 낮부터 시간을 세어보곤 했던 기억이 있다. ‘아 이제 7시간 남았네-‘ 하는 순수한 극성스러움이 있었다. 드라마 주인공의 직업에 따라 장래희망이 변화무쌍 해지는 시절이었다. 이브의 모든 것의 주인공은 아나운서여서 신문을 보고 계속 따라 읽기도 했다.

어느 날은 출발 비디오 여행을 보며, 그 방송에서 소개되는 대부분이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인 줄도 모르고, 우쭐한 마음에 동네 언니들과 동생들에게 이러저러한 내용의 영화가 있는데 엄청 재밌을 것 같다며, 빌려보자고 우르르 비디오 가게로 몰려 가서 망신을 당한 적이 있다. “이거… 개봉도 안 한 영화 같은데..?”(아직도 그 영화 제목이 기억나는데, 김희선 주연의 ‘자귀모’였다)



6학년 때쯤엔 우연히 밤늦게 해주는 특선영화 ‘내 남자 친구의 결혼식’을 봤다가 매료됐었고, 어린 마음에 줄리아 로버츠가 극 중 짝사랑하는 친구와 이뤄지길 초조하게 바랬었다. 그녀의 팬이 되어 다음 날 바로 비디오 가게로 달려갔었다.

한참을 고르다가, '노팅힐’을 집었다. 사실 진작 골라놨는데 계산대로 가기가 무서워서 시간을 끌며 달궈진 얼굴을 식혔다. 6학년답게, 의연하게, 당당하게 빌리고 싶었다.

그래 봤자 불안감이 사그라들지 않아 덜덜 떨었지만. 12세 관람가라, 13살이었던 내가 볼 수는 있었지만, 또래에 비해 많이 앳된 얼굴이었어서, 알바생 언니의 반응이 무서웠던 것이다. 무시하지 않을까, 몇 살이냐고 물어보려나, 그냥 무난한 걸 고를까-

그래도 용감하게 걸어갔는데, 그 언니가 (지금 기억으로는) “이걸 본다고?” 하며 아연실색했다. 그 반응에 상처를 입었더랬다. 우물쭈물 대답을 제대로 못하고, 어린 마음에 뭔가 나쁜 짓을 하다가 걸린 사람처럼 느껴져서 “저.. 그냥 다른 거 보려 구요” 하고 다시 드렸다. “그렇지? 이거 보기엔 아직 어리지”라는 말에 “네..” 하고 쑥스럽게 웃었다. 그러고는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영화뿐만 아니라 만화책도 엄청 좋아했는데, 한 권 한 권 빌려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 당시 가장 큰돈을 만져볼 때는 친척들을 만나는 날이었는데, 5000원, 10000원 같은 지폐를 보는 순간, 벌써부터 두근거리고, 얼른 비디오 가게로 달려가서 어떤 걸 빌려 볼까 행복한 고민을 했었다. 5000원이라니, 10000원이라니! 몇 권을 빌릴 수 있을지 세 보기도 하고- 보통 때에는 한두 권씩 빌려 보곤 했는데, 그렇게 돈을 받으면 한 번에 5권- 혹은 더 많이 빌려서 봤다. 만화책이 무겁게 들어있는 검은 봉지를 왔다 갔다 흔들며 집으로 걸어오는 그 길의 설렘이란-



부모님이 두 분 다 늦게 오시는 날엔 동생과 집 앞에서 만화책을 보며 기다렸던 기억도 난다. 그 당시에는 어두워졌는데도 부모님이 안 돌아오시면, 집에 할머니가 계셨는데도 마음이 쉽사리 두려워졌고 그 불안감을 동생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 “우리 밖에서 만화책 보면서 기다릴래?” 했다. 경비 아저씨가 나와서 엄청 크게 웃으시며 “너희 여기서 뭐 하니?” 했던 기억.



바로 집 앞에 있다고 할 만큼 가까운 거리에 ‘깨비 책방’ 이 있었다. 사장님은 커트머리에 뽀글뽀글 파마하신 여자분이었는데, 그 당시 내게 깨비 책방이라는 귀여운 이름과 사장님의 이미지가 닮아 있어서 더 애착을 가졌던 공간이었다. 어느 날 그 건너편에 ‘영화 마을’이라는 비디오 가게가 생겼고, 어린 마음에 영화 마을을 깨비 책방의 라이벌쯤으로 생각해서 생긴 지 초반엔 약간 미워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깨비 책방은 진작에 사라졌고. 영화마을은 이름을 계속 바꾸더니 이번 재개발로 완전히 문을 닫았다.



영화마을이 굳건히 자리를 지켜준 덕분에, 오랜 시간- 귀가 길에 슬쩍 들려서 한 두 권씩 만화책을 빌려볼 수 있어서 긴 밤이 무료하지 않았고- 어릴 적에 좋아했던 영구 시리즈를 비디오로 빌려 봤던 기억도 내게는 소중하다. 책장 한가득 꽂혀 있는 순정만화. 시원한 에어컨 바람. 만화책이 모여 있는 곳에서 나는 책 냄새. 영화 마을에서만 났던 새콤한 냄새, 미는 식의 책장이 무거워서 끙끙대며 밀던 기억, 마음이 힘들 때 비디오를 빌려 밤늦게까지 불 꺼놓고 보며 어느새 모든 걸 까먹었던 기억, 한 권에 400원, 좋아했던 야자와 아이.



크고 보니, 그렇게 설레는 것으로만 가득한 공간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안녕- 영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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