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서 오래 일하시다가 처음 가게를 꾸릴 때의 엄마는 설레 보였다. 가게를 연 초반에는 장사가 잘 안됐었는데, 그래도 새벽 12시, 1시까지 가게에 남아계셨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분식집이 새벽까지 손님을 기다리지...’ 하고. 아직도 어둑한 뒷골목에 혼자만 덩그러니 환하던 칼국수 집이 선하다.
어머니가 10년 가까이 운영하셨던 칼국수 집 건물도 이번 재개발로 완전히 헐린다.
식당의 메뉴는, 바지락 칼국수, 수제비, 팥칼국수, 콩국수, 떡만둣국, 냉면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콩국수가 별미였다. 면을 직접 뽑아서 삶아 차가운 물에 바로 씻어내서 여느 집의 콩국수 면 보다 두껍고 쫄깃했다. 콩 국물은 검은콩을 많이 넣고 갈아서 색깔이 연둣빛이었는데, 깨까지 팍팍 넣고 갈아서 그렇게 고소할 수가 없었다. 또 겉절이는 간 청양고추를 많이 넣고 버무려 매콤하니, 콩국수 위에 겉절이를 올려 먹으면 느끼하지도 않고 든든하니, 남부러 울 것 없었다. 바지락 칼국수는 큰 대야에 홍합이랑 바지락을 잔뜩 넣고 푸짐하게 나갔는데, 크기가 어마 어마했다. 그 큰 그릇을 상에 탁 내려놓으면 손님이 “우와” 했는데, 그 탄성의 소리가 듣기 좋았었다. 괜히 내가 뿌듯해진달까. 이렇게 식당에 와서 가족과 한 끼 먹는 게, 노곤한 일상 속에 설레는 일이라는 걸 아니까. 큰 칼국수 그릇을 보며 좋아하시고, 어후 얼른 먹자- 하시며 들뜬 손으로 국자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들이 훈훈했다.
칼국수 집 일은 좋은 아르바이트였다. 바쁜 점심시간이 지나면, 철 없이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어서 햄버거나 떡볶이나 뭐든 사 먹자고 졸랐다. 딱 먹으려는 찰나에 손님이 들어올 때가 많았는데, 기분을 못 숨기고 얼굴이 흙빛이 되어 주문을 받으면서도, 음식 식을 텐데 하고 철없이 걱정했던 기억에 웃음이 난다. 그래서 지금도 식당에 들어갔을 때 밥을 드시고 계시면 너무 미안하다. “나… 나갈까요?”
아, 어느 날. 블로그에 우리 칼국수 집이 올라온 일도 있었다. 엄마한테 듣고 찾아봤더니 진짜 있었다- 기억나는 문구는 '뒷골목에 이런 간판. 왠지 맛집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나요?' 하는. 하하- 캡처해서 엄마한테 보내줬는데, 몇 날 며칠 들여다보시고 얘기하시고. 좋은 시간이었다.
학교에 다녀오거나, 일하고 귀가하는 길에는 꼭 엄마 가게부터 들렸었다. 퇴근하는 밤은 어느 날은 우울했고 어느 날은 좋은 일이 있었고, 대부분은 피곤했다. 여러 날, 힘든 날에도 엄마 가게로 곧장 가서 ‘엄마 만둣국 먹고 싶어’ 하면 뜨뜻한 국물에 매콤한 겉절이를 올려 먹을 수 있으니, 힘이 났었지.
그날은 지방에 갔다가 캐리어를 끌며 여느 날처럼 칼국수 집에 왔는데, 걸음을 우뚝 멈출 수밖에 없었다. 불이 꺼져 있고 사방에 금이 쳐져 있고, 누가 봐도 장사를 안 하는 집처럼 되어 있었다. 한달음에 집에 가서 엄마에게 물었더니, 시큰둥하게 그렇게 됐어. 했다. 문을 닫은 게 엄마의 자의가 아니어서, 슬퍼할 줄 알았는데 그런 반응에 무안해졌다. 결과적으로는 타의에 의해 문을 닫으며 10년 만에 엄마가 집에서 맘껏 쉬는 모습을 봐서 좋았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그렇게 가게를 일구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냥 식당을 열면 손님이 오는 줄로만 알았지. 식당을 연 초반에 엄마의 두려움이나, 힘든 손님을 맞을 때의 고통을 알아주지는 못했지. 특히 손님이 많이 남기고 간 그릇을 치울 때 많이 속상해했다. 나까지 그 기분이 전해져서 제 손으로 빚어낸 면과 육수와 조개들을 버리는 엄마의 손이 슬퍼 보였다.
칼국수 집은 그 오랜 세월, 엄마의 일터이자 쉼터이자, 우리 친척들의 모임 장소이자, 나를 먹여준 고마운 곳이다.
커다란 김치 부침개를 공짜로 줬던 우리 가게. 10년 동안 단 돈 500원 올리고, 겉절이는 아주 양껏 주시는 엄마를 이해 못 했다. ‘엄마 조금만 더 올리자’고 해도 ‘그래서 오는 거야’라고 대답하던 엄마.
가끔, 그 콩국수와 칼국수가 먹고 싶다. 좁은 부엌에서 엄마가 투닥거리는 모습을 오래 바라봤었지. 대학에 합격했을 때도 칼국수 집으로 얼른 뛰어가 헥헥거리며 합격했어!라고 외쳤고. 엄마의 손으로 빚어낸 두껍고 쫄깃한 밀가루 면과 후추 향이 나던 얼큰한 국물과 아삭하고 매운 배추 겉절이가 아직 내 몸에 남아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긴 시간, 칼국수 집은 내 삶과 함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