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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나무 Apr 13. 2020

사라지는 우리 동네




우리 아파트 맞은편 라인에 오천 세대의 아파트가 들어서는데 ㅡ우리 아파트 라인의 2개의 아파트와 초등학교만 남고 주변의 모든 곳이 공사판이 되는ㅡ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위해선 당연히 그전에 있었던 것들이 사라져야 한다. 나는 벌써부터 그것들이 허물어지면서 내뿜는 소리와 지독한 먼지들을 걱정한다. 왜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어떤 자국을 남길까, 왜 우악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것일까 생각한다. 내 안에 있던 어떤 감정들도 그냥 사라져 주는 법이 없었지, 악을 쓰거나 눈물을 토해내거나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며 겨우 사그라들곤 했었지.



어제 친구와 통화하다 새벽의 거리를 걸었다. 걷다가 곧 소름 끼치는 이질을 느꼈다. ㅡ안개가 껴있고 공기도 평소보다 차가웠지만 그것이 이질의 본질이 아니라는 이질ㅡ 언제나 그 시간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사람이 없어서 느끼는 공포였다기 보다는 이제 그곳엔 말소리가 없고, 뛰어다니는 아이들도, 초등학교 앞의 문구점도, 피아노 학원도, 야채를 살 수 있는 슈퍼마켓도…  생활이 사라진 폐허가 주는 無의 공포였다. 인적은 없는데 그들이 남긴 물건과 그 물건의 냄새만이 남겨진 공간이 주는 스산함.



아- 이 동네에 그 소리와 공기와 분위기는 ‘모두’가 만든 것이었구나, 누군가의 표정이, 걸음걸이가, 삶의 의지가, 지속되는 일상 속 무기력 혹은 이겨낸 기운들이 만들어 낸 것이었구나. 내가 아무리 늦은 시간에 걸어 다녀도 안전하다고 느꼈던 감각도, 땡볕에 초등학교 앞을 지날 때- 그 거리를 걸을 때만 느끼는 안온함, 어느 시기를 추억하며 걸을 수 있는 적정의 온도도 다 같이 만든 것이었구나 하는.



늘 걷는 산책 코스에 이제는 생활의 냄새도 인적도 없고, 블랙홀 같은 거대한 흙 땅이 자리 잡아 있거나, 깨지고 부서진 유리파편들, 뻥 뚫린 창문, 그리고 사람도 없다. 인적이 드문 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한 나로서는, 황당한 쓸쓸함이었다. 지하철 안이나 지하상가, 번화가 거리의 소음에 갇힐 때 막히는 숨, 소리가 적은 곳에 가고 싶고 사람들의 지친 기색이 덜 존재하는 곳을 바라 왔었다.



그렇지만



모르는 사람들에게 받는, 받아왔던 힘을 감각했다. 소음에, 먼지에 파묻혀도 같이 살고 싶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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