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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나무 Aug 29. 2020

전기 집 아저씨


전기 집 앞 길목은 내가 어디를 가나- 버스를 타고 가까운 시내를 나가나, 서울을 나가나 지나쳐야 하는 곳이다. 늘 건너편 신협 앞에 앉아 바람을 쐬고 계시던 아저씨. 내가 지나가면 미소 지으며 “어디 가냐”라고 묻곤 하셨다. 거짓말이 아니라 십수 년 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어디 가냐’였다. 머리가 크고 나선 그 질문이 겸연쩍기도 하고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어디를 가는지 말씀드려야 되나 아니면 그냥 둘러대야 하나 갈피를 잡기 어렵기도 하고, 치기 어린 날에는 어디 가냐에 대답할 만큼 변변찮은 데를 가는 것도 아닌 거 같아서 못 본 척하고 지나칠 때도 많았다.


전기 집은 없었을 때를 떠올릴 수도 없을 만큼 오래된 곳이다. 아마도 내가 태어나기 , 혹은 갓난아기  때부터 존재했을 것이다. 아저씨는 항상 미소가 가득하고  빨간 헬멧에 스쿠터를 타고 다니셨다. 나는 건물이 사라지고 아저씨도 보지 못하게 되기 전에는 몰랐지만 그렇게 시종 인자한 인상의 어른을 보는 일이 좋았던  같다. 그리고 내가 지나가는 길목에서  인사말을 건네줬던  다정함에 대해서도 뒤늦게 생각한다.


막상 사라진다고 하니 헛헛하기도 하고 그동안 피했던 ‘어디 가냐들이 벌써부터 아쉬워져 다른 곳을 보고 계신 아저씨를 향해 큰소리로 "안녕하세요" 외쳤다. 아저씨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 그래 다녀와라하셨다.


이로써, 내 곁에 있던 거의 모든 가게들은 문을 닫았고 건물들이 아예 통째로 사라졌다. 몇 달, 몇 년만 지나도 이 동네는 내가 알던 동네가 아니게 되겠지. 누군가 왜 이렇게 호들갑이냐고 묻는다면- 그러게요, 저는요 영원할 줄만 알았나 봐요. 미용실 아줌마가 타주는 믹스커피도, 잠옷 바람으로 뛰어갈 수 있는 구멍가게도 그냥 다 영원할 줄 알았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내가 누비던 건물이 헐리고 난 자리에 땅을 뚫는 소리가 나요. 드드드드드 드드드드드 나는 무의식 중에도 그 소리가 내 마음 어딘가도 함께 뚫고 있음을 느껴요. 그래서 나는 바로 일어나지 않고, 꿈을 꾸는 것도 아니고 아예 또렷한 의식도 아닌 곳에서 어딘가가 같이 헐리고 있어요.  




전기 집이 사라지기 전



전기 집이 사리지고 난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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