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집 앞 길목은 내가 어디를 가나- 버스를 타고 가까운 시내를 나가나, 서울을 나가나 지나쳐야 하는 곳이다. 늘 건너편 신협 앞에 앉아 바람을 쐬고 계시던 아저씨. 내가 지나가면 미소 지으며 “어디 가냐”라고 묻곤 하셨다. 거짓말이 아니라 십수 년 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어디 가냐’였다. 머리가 크고 나선 그 질문이 겸연쩍기도 하고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어디를 가는지 말씀드려야 되나 아니면 그냥 둘러대야 하나 갈피를 잡기 어렵기도 하고, 치기 어린 날에는 어디 가냐에 대답할 만큼 변변찮은 데를 가는 것도 아닌 거 같아서 못 본 척하고 지나칠 때도 많았다.
전기 집은 없었을 때를 떠올릴 수도 없을 만큼 오래된 곳이다. 아마도 내가 태어나기 전, 혹은 갓난아기 일 때부터 존재했을 것이다. 아저씨는 항상 미소가 가득하고 늘 빨간 헬멧에 스쿠터를 타고 다니셨다. 나는 건물이 사라지고 아저씨도 보지 못하게 되기 전에는 몰랐지만 그렇게 시종 인자한 인상의 어른을 보는 일이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지나가는 길목에서 늘 인사말을 건네줬던 그 다정함에 대해서도 뒤늦게 생각한다.
막상 사라진다고 하니 헛헛하기도 하고 그동안 피했던 ‘어디 가냐’들이 벌써부터 아쉬워져 다른 곳을 보고 계신 아저씨를 향해 큰소리로 "안녕하세요" 외쳤다. 아저씨는 큰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어 그래 다녀와라” 하셨다.
이로써, 내 곁에 있던 거의 모든 가게들은 문을 닫았고 건물들이 아예 통째로 사라졌다. 몇 달, 몇 년만 지나도 이 동네는 내가 알던 동네가 아니게 되겠지. 누군가 왜 이렇게 호들갑이냐고 묻는다면- 그러게요, 저는요 영원할 줄만 알았나 봐요. 미용실 아줌마가 타주는 믹스커피도, 잠옷 바람으로 뛰어갈 수 있는 구멍가게도 그냥 다 영원할 줄 알았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내가 누비던 건물이 헐리고 난 자리에 땅을 뚫는 소리가 나요. 드드드드드 드드드드드 나는 무의식 중에도 그 소리가 내 마음 어딘가도 함께 뚫고 있음을 느껴요. 그래서 나는 바로 일어나지 않고, 꿈을 꾸는 것도 아니고 아예 또렷한 의식도 아닌 곳에서 어딘가가 같이 헐리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