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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Oct 04. 2020

부풀은 시절


유년시절 우리는 바닥에서 놀았다. 땅바닥, 흙바닥, 시멘트 바닥, 콘크리트 바닥. 어디든 정겨웠고 어디는 철퍼덕 앉으면  것이 지천에 널려있었다.  씨를 돌멩이로 빻아 가루를 만들고,  잎을 찧어 온갖 땅에 있는 것들과 섞으며 놓았다. 우리가 너무 늦게까지 놀아서 동네 아주머니께 혼이 나도, 함께 노는 즐거움에 취해  같이 웃었다. 놀이터에 가면 모르는 아이들 천지였는데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도무지 기억이  나는데, 아마 흙에 어떤 친밀해지는 성분이 있어서 금세 같이 모래성을 쌓고 놀았나 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해도 함께 해야 훨씬 재미있다는 것을-


어릴 적엔 밤이 오는 것이 무서웠다. 다들 뿔뿔이 흩어져야 했고, 어둠이 깔리면 지나가는 경찰차가 내는 굉음에도 깜짝 놀라 숨었다. 부모님 두 분 다 늦게 들어오시는 날이 많아서 동생과 밥을 해 먹곤 했는데, 왜인지 가장 기억나는 게 직화 불갈비라는 인스턴트 햄이다. 1200원, 저렴한 가격으로 간단하게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어봤는데 나는 아직도 직화 불갈비를 처음 먹었을 때의 인상을 또렷이 기억한다. 첫맛은 달고 씹을수록 짭조름했다. 나는 스스로가 무척이나 기특했다. 아니 이 돈으로 이런 맛의 햄을 구입하다니!

동생과는 투닥대기도, 같이 놀기도 잘했는데 어느 날 불현듯 동생의 머리를 자르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과격한 누나였는데, 어쩌면 동생의 머리를 자르고 싶었다기보다는, 미용실 놀이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농에서 수건을 꺼내 동생 어깨에 두르고 나무 의자에 앉히고 서걱서걱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그때 동생이 어떤 반응이었는지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다. 불안해했던 것 같기도 하고, 같이 재밌어했던 것 같기도 하다. 돌아오신 엄마는 걱정과 다르게 동생 머리를 잘라줬냐며 기특해했다. 얼마간 지나고 문득 엄마에게 칭찬받은 일이 떠올라 부푼 마음에 또 머리를 잘라줬는데, 그때는 돌아오셔서 노발대발 화를 내셨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우리 아파트에는 내 나이 또래 언니들과 동생들이 많아서 매일 함께 놀았다. 생각해보면 내가 처음 영어를 배운 것도 그 언니들에게서이다. 내 생애 첫 A B C를 배우는 일은 퍽 재밌었는데 아마도 그건, 어린이들에게는 어른들보다도 언니들이 더 큰 어른이요, 예쁨 받고 싶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칭찬받고 싶어서 열심히 외우고, 알파벳을 한글 발음으로 어떻게 바꿀 수 있는 지를 배웠다. 두고두고 정말 요긴했다. 내 이름을 알파벳으로 처음 써준 것도 언니들인데, M-O-K-K-U-R-I 한참을 그렇게 썼었다. 지금 보면 목-큐-리인데.

우리는 하루 종일 별별 놀이를 다 했다. 분필로 바닥에 휙휙 선을 긋고, 팀을 정하고. 무아지경으로 놀아도 시간이 남아돌았다. 아직도 볕이 쨍쨍했다. 한 번은 놀러 가자며 다 같이 하염없이 걷다가 산을 올랐고, 지나가던 아저씨가 조금만 더 가면 물놀이할 수 있는 개울이 있다길래 우리는 신나서 더 깊이 들어가다 지치고 말았다. 아무리 가도 계곡은 나오지 않았다. 그 아저씨가 거짓말을 했는지 우리가 길을 못 찾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은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고 목이 바짝 타서 죽는 줄 알았다. 제일 나이 많은 언니가 주유소에 얘기해서 물을 얻어 마실 수 있었다. 달았다. 집에 돌아와서는 뿌듯함에 기세 등등하게 엄마에게 자랑했지만 엄마는 대관절 어디까지 다녀온 것인지 가늠하지 못하니 어리둥절해할 뿐이었지만 나는 계속 그렇게 먼 곳까지 걷고 오다니! 했다.


핸드폰이 없었던 그 시절에는, 언니네 집 앞으로 가서 언니 이름을 크게 불렀다. 언니가 아니라 언니네 어머니나 아버지가 나올까 봐 콩닥콩닥 하면서 말이다. 친구네 집에도 집전화로 해야 했으니까 친구 어머니가 받으실 때가 종종 있었는데 몇 번 끊어버린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제일 신기한 게, 언니들이나 친구들이랑 싸웠을 때가 있었는데 하룻밤만 지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바로 같이 놀았다.

지금은 뭐가 그리 복잡한지 조그만 생채기에도, 토라지고 마음이 굳는데.


이제 다 커버린 나는 그때처럼 땅바닥에서 놀고 싶은데, 손으로 흙을 만지고 모르는 타인과 얼른 친구가 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니, 자취하는 남동생이 집에 놀러 오면 꼭 걸으러 가자고 말한다. 정말 피곤한 날에도 나가자고 한다. 어릴 적부터 누비던 동네를 다 큰 어른 둘이 유유자적 걷는다. 그 언니, 그 동생들을 우연히 만나더라도 괜히 모른 척 지나가겠지만-

가끔은 궁금하다. 나처럼 우리가 함께 보냈던 그 시간들을, 놀이들을 가끔 만져보는지.



언니, 나는 아는 게 더 많아지고 이제는 제법 울음을 잘 참는 어른이 됐지만 그때 우리의 그 천진함만 못한 것 같아요. 지나가다 언니 어머니가 언니 아들을 안고 있는 모습을 봤는데 머리가 동글동글한 게 너무 귀여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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