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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나무 Nov 03. 2020

소속감에 관한 고찰

나는 이 글을 읽는 누군가 중에 누군가가 동질감을 느끼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래서 그 사람이 본인의 유년기나 사회생활의 한가운데서 겪었던 어떤 수치를 위로받는 모습을.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하거나 나는 여전히 이상한 사람이지만 비슷한 사람이 있으니까 괜찮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결과적으로는 덜 외로워진 누군가. 어쩌면 내가 그렇게 느끼고 싶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소속감이라는 단어는 내 역사와 더불어 함께했고, 날 어렵고, 외롭게 했다. 그 시작은 한 아파트에 사는 또래 아이들 안에서, 유치원 그 작은 교실에서, 초등학교 입학식 때 운동장에 빽빽하게 줄 선 아이들 사이에서였다.


여러 아이들 가운데 있을 때 들었던 긴장감. 3월, 새 학기에 얼른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조바심. 얼른 말을 걸어야 하는데 너무 두근거리던 심장, 이미 말을 트고 있는 아이들- 섞여있어야 이상하지 않은 아이로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본능, 동정을 받는 아이는 절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 선생님이나, 아이들이 부디 나를 소외된 누군가로 분류하지 않기를 바랐던 간절함.

 

학생일 때는 학교라는 곳만 졸업하면 소속감에 대한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질 거라는 순진한 생각을 하며 혼자 음흉하게 기뻐하곤 했다. 학교에서는 짝을 지어야 하고, 조를 짜야하니까. 또 학교는 혼자 있기에는 너무 외로운 곳이니까.


최악의 체육시간이 생각난다. 내 무릎은 좀 까맣다. 아마도 너무 개구지게 놀아서 무릎에 피가 마르는 날이 없을 정도로 다쳤던 탓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너무 기어 다녀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체육복은 반바지였고, 나는 무릎을 드러내야 했다. 그런데 한 아이가 수군 거리다 공개적으로 면박을 줬다. 그 순간 나는 공개적으로 무릎이 이상한 아이가 됐고, 그 한 번의 면박으로 체육시간마다, 체육복으로 갈아입을 때마다 수치심을 느꼈다. 무리와 다른 점이 공개되자 열외 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 열외 된 기분, 그 분위기에 섞이지 못하는 기분이 나를 비참하게 한다. 지금도 그 소외된 기분을 피하기 위해 무던히 발버둥 칠 때가 있다.


어른이 되고 학교로부터 자유로워진 지금도- 사람이 많은 곳에 가기 전날, 그에 더해 그 많은 사람 중에 불편한 사람이 여럿 있는 곳에 가야 하는 전날 밤은 쉽게 잠에 들지 못하고 여러 안 좋은 상상들을 한다. 그 상상 속의 나는 분위기에 스며들지 못하고 허공을 헤매다 쓸쓸히 집에 돌아온다.


섞이지 못해 쓸쓸했던 마음, 어울리고 싶어 성급해진 마음들을 뒤로하고 어렸던 나에게 얘기해주고 싶다. 이건 일종의 다짐의 글이다- 섞이지 못해도 네가 이상한 사람은 아니라고. 너무 급하게 무언가 할 필요 없다고. 급하게 누군가와 친해지려고 하면 음식을 먹고 체하는 것처럼 관계 안에서도 체할 수 있다고. 너의 마음이 불행할 때 누군가에게 어떻게 보이기 위해 발버둥 치지 말라고.

어린 나에게 이 얘기를 해 줄 수는 없으니까 지금의 나에게 외친다.


좀 다른 너의 무릎도 사랑하고, 상처 받은 마음을 눌러버렸던 스스로도 좀 미워하지 말고, 혼자가 될까봐 바쁜 네 마음도 꼭 초라한 것만은 아니라고.

어쩌면 많은 사람들, 빽빽이 줄 선 사람들 중 누군가는 나와 같은 마음으로 서성이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내가 그 사람의 친구가 되어 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이제는 마음 바삐 서성이지 말고 바라보자고-


나와 닮은 누군가. 좀 덜 외로워지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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