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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Sep 24. 2020

내 마음을 이루고 있는 말들

미안해 솔직하지 못한 내가

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 적 처음 떠올린 말은 뭘까,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뱉으려다 삼킨 말은 뭘까, 삼킨 말들이 뱃속에서 퉁퉁 불어 마음이 답답해지기 시작한 때는, 퉁퉁 불은 활자를 토했다 주워 담지 못해 엉엉 운 적은-


혹시 그동안 뱉지 못했던 말들이 내 마음을 이루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어쩌면 양수에 불은 얼굴을 하고 엄마 뱃속에 있을 적부터 겁쟁이였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계속 그곳에 숨어 있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애초부터 겁쟁이였던 나는 말을 한참이나 고르거나 겁에 질려 말을 막 뱉고는 후회하는 사람이고 만약 그럼에도 내가 솔직한 말들을 꺼낸다면 그건 당신을 위해 내 자존심을 내려놓겠다는 뜻, 상처를 입겠다는 각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증거인 셈이다.


나는 유치원, 초등학교로 거슬러 올라가 말들이 난무하는 공간에 처음 발을 디딘 순간부터 솔직해지기를 얼른 포기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이나 솔직해도 되는지 몰랐다. 그래서 보통 참거나 속상해했다. 그때의 나는 몰랐겠지만 내 진짜 마음을 얘기하지 못하고 다른 말들 안에서 헤맬수록 솔직한 말이, 나와 남에게 주는 순기능은 영 누리지를 못했다.


어릴 때에는,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른들은 무표정하고, 이야기를 들을 줄 모르며, 쉽게 화내고 금세 표정을 숨긴다. 슬픈 눈을 하고 있다가도 말을 걸라치면 미간을 찌푸린다.

그런데 내가 어른이 되고 보니,

부끄러울 때나, 자랑하고 싶을 때나, 두려울 때나, 누군가를 좋아할 때나, 울고 싶을 때 바로 미간을 찌푸리고 말을 크게 한다. 화라는 감정에 숨는다. 화를 내며 참는다.


미간을 풀고 솔직한 말을 할 때는 여지없이 눈물이 난다. 나도 어처구니가 없다. 내 입 안의 것들이 발화하려 움직이기도 전에 목 울대가 서럽고 뜨거운 김으로 가득 차서 말을 뱉기 전 여지없이 정적을 만들고야 만다.


내가 그나마 화를 잘 내는 이상한 인간에서, 말하며 울고야 마는 불쌍한 인간으로 변한 데는 이유가 있다.

그건 다 내 주위의 꽤 솔직한 사람들 덕분이다. 그리고 나의 솔직한 말을 들어준 사람들 덕분이다.

A라는 친구는 내가 자존심을 부릴 때 허를 찌르는 솔직한 말들로 나를 누그러뜨리고 본심이 아닌 말을 해버린 것을 후회하게 했다. 내가 나쁜 말을 뱉었을 때 나에게 상처 받았다고 당당히 말한다. 그러고는 꼭 협박을 하지만. 네가 솔직하게 말 안 하면 나도 이제 솔직하게 말 안 할 거야 하고.

B라는 친구는 내가 아주 오래전 상처 받은 일을 꺼냈을 때,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내게 사과를 건넸다. B의 진심 어린 눈은 내 마음 안에 무언가를 허물어지게 했고, 그토록 오해하고 오해하다 얘기한 스스로의 치기 어린 마음들을 무색하게 했다. 그리고 그제야 뱃속에 퉁퉁 불은 말들을 끝내 전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리웠다.


이들 덕분에 나는 솔직함이야 말로 누군가를 향한 사랑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러니까 다른 말로 당신을 통제하려 하지 않고 내 속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나에겐 이루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이 이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나를 감추는 것을 포기하겠다고-


어쩌면 내 마음은 자존심을 내려놓고, 상처 받겠다는 각오를 하고, 그럼에도 나를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말해준 누군가의 솔직한 마음들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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