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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집 Oct 06. 2022

요즘 텃밭엔 무엇이 있나요

텃밭 이야기 1

 10월 첫째 주 텃밭엔 배추가 펄럭입니다. 


 텃밭의 작물들이 자라는 것만 보고 있어도 1년이 후다닥 지나가는 마법을 아실까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동네 할머니들 밭엔 어떤 씨앗이 뿌려지나, 어떤 모종이 심겨 있나 눈치가 빨라야 하는 건 물론이고, ‘텃밭 농사 무작정 따라 하기’ 책도 한 권 사고 초보 농사꾼의 친구 유튜브도 챙겨 봐야 합니다. 

그렇게 올해도 봄 여름을 보내고 이제 가을 농사의 끝판왕 김장 배추와 무가 텃밭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텃밭 이야기는 아무래도 계절과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어서 그때그때 소식을 전해보려고 하는데요, (궁금하신 분들이 있으실까 심히 걱정은 됩니다.) 그래서 첫 번째 이야기는 가을 배추로 정했습니다. 


 8월 말 아직 더위가 한창인 늦여름에 텃밭은 이미 겨울 김장을 위한 준비를 합니다. 

매년 김장을 하긴 했지만 배추와 무는 김장하는 날 보따리로 사 오는 것이었지 이것들이 어디서 어떻게 자라고 오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요, 알고 보니 김장이라는 건 여름부터 시작되는 것이었죠. 

그때까지 텃밭을 차지하고 있던 감자나 양파는 이제 거두어들입니다. 저장이 중요한 작물들이니 썩지 않게 잘 단속을 해두고, (이 아이들의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또 하게 되겠지요) 빈 텃밭에는 거름을 가득 뿌립니다. 그 농사철이라는 것이 다 비슷하니 거름은 우리 집에만 뿌리는 것이 아닙니다. 온 동네에 꼬릿꼬릿한 거름 냄새가 풍기기 시작하는데 1년 2년 묵혀 놓은 퇴비를 사용하는 것이라서 생각보다 큰 자극은 없습니다. 아니면 제 코가 이제 적응을 한 것일까요. (엄마는 제가 그렇게 자연스러워할 때마다 그러지 말라고 걱정하십니다. 무얼?) 

그 후엔 거름과 밭흙이 잘 섞이도록 열심히 삽질을 해야 합니다. 밭을 뒤집어엎는 것인데요, 경운기가 있으면 좋겠지만 손바닥만 한 밭에 경운기는 어림도 없으니 그저 날이 갈수록 요령 있게 삽질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삽질이란 게 꽤나 힘든 일입니다. 땀도 나고 숨도 차고 어르신들은 대체 어떻게 하시는지 매년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다음 일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고랑 만들기입니다. 처음엔 그저 고랑을 만들면 되는 일인 줄 알았는데요, 어느 해인가 이웃집 할머니들 텃밭을 지나다 보니 삐뚤빼뚤한 우리 고랑과는 다르게 할머니들 텃밭의 고랑은 너무 단정하고 정갈하기까지 한 것을 보았지요. 그때부터였습니다. 가지런히 쭉 뻗은 고랑을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이게 되었는데 그러고 나서 보면 얼마나 흐뭇한지요. 모든 작물이 잘 자라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답니다. 

올해 배추밭 고랑도 성공적입니다


 배추는 모종을 심고 무는 씨앗을 심는다는 것 알고 계신가요? 작은 풀잎 같은 배추 모종이 추운 날씨를 잘 이겨내면 알이 꽉 생긴 김장 배추가 되고, 콩알보다 작은 무 씨앗은 2일-3일 만에 떡잎을 내보내고 무럭무럭 자라 제 종아리같이 튼튼한 겨울 무가 됩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계절은 금세 여름에서 가을 그리고 겨울로 넘어갑니다. 신기하고도 재미있는 세계이지요. 


 10월 첫째 주 오늘도 배추와 무는 열심히 자라고 있습니다. 

벌레가 좋아하는 걸 보니 맛있나 봅니다

지난 달에 불어 닥쳤던 태풍 '힌남노' 때문에 아직 어린 시절이었던 배추 모종 몇 포기와 무 새싹들이 날아가긴 했지만 다시 흙을 잘 덮어주고 꾹꾹 자리를 눌러주었더니 장하게도 땅에 뿌리를 내리고 쑥쑥 자랍니다.

배추는 처음 모종을 심을 때부터 완전히 자랐을 때의 크기를 생각해 간격을 두고 심는데요, 무는 씨앗이 워낙 작아 촘촘히 뿌린 다음 이파리가 어느 정도 자라면 솎아주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통풍도 잘 되고 크고 알찬 무가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솎아 낸 무 이파리들은 버리는 게 아니라 엄마 손을 거쳐 시원한 물김치도 되고 맵싹한 열무김치도 됩니다. 채소값이 엄청나게 폭등하고 있다는 요즘, 대부분의 채소를 텃밭에서 가져와 바로 먹을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입니다. 사실 먹을 만하게 키우기까지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을 따지면 사 먹는 게 오히려 싸다고들 하지만, 내 손으로 직접 기른 먹을거리의 가치란 계산하기 힘들지 않을까요. 


 아침저녁으로 하루가 다르게 더욱 쌀쌀해진 공기가 내려앉습니다. 찬 바람과 서리는 배추와 무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달고 풍성한 맛을 심어주겠지요. 가을 날씨가 더할 나위 없이 좋으니 작년보다 올해 수확이 더 좋을 거라는 작지만 큰 기대도 해봅니다. 그렇게 매해 한 뼘씩 자라는 작물들처럼 저도 땅에 기대어 뿌리내리며 조금씩 더 성장하려고 합니다. 땅을 밟고 산다면 그 힘으로 왠지 모든 게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텃밭 이야기에는 얼마나 더 큰 배추 소식을 전하게 될까요. 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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