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요새는 내가 짓기로했다

무너진 마음에 지어올린 나만의 요새

by 소편

나는 작년 8월, 예기치 못한 소용돌이에 휘말려
급히 요새를 탈출했다.
보통은 또 다른 요새를 마련해두고 탈출을 감행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어디로 가든 결국 다 비슷비슷한 요새였고,
마지막 요새에선 몸과 마음이 완전히 폐허가 되어
더 이상 나를 방치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요새를 짓기 시작했다.
남이 만들어놓은 요새만 떠돌던 내가
처음으로 직접 만들어가는 공간은
어쩐지 조금 설레기까지 했다.

그것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일이었다.
내 인생에 이런 일을 하게 될 줄은
꿈에서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해야만 했다.

회사라는 요새를 더 이상 선택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결심한 이상,
이 새로운 일에 반드시 적응해야 했다.
그렇게 나는 10년차 마케터에서
초보 호스트가 되었다.

직접 숙소를 정비하고 청소하면서
오픈 준비를 하던 시간은 고되고 낯설었다.
그런데, 첫 게스트의 예약을 확인하던 순간—
모든 고됨이 마치 입안에 녹아드는
달콤한 아이스크림처럼 스르르 녹아내렸다.

사람의 앞날은 정말 알 수 없다.
내향적이고 여행도 즐기지 않던 내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니.
이 사실은 여전히 지인들도 나조차도 믿기 어렵다.

그럼에도 내가 만든 이 요새엔
여행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고,
언어가 달라도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도 생겨났다.

예전엔 남이 만든 요새 안에서
모든 일이 나를 옭아매는 줄만 알았다.
그 안에 있는 시간은 고통일 뿐이라 믿었다.

하지만 지금,
나만의 요새에서 바라본 과거는 조금 달라 보인다.
떨어져 있던 퍼즐 조각들이
이전의 경험들과 착착 맞아 들어가며
그 모든 것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예전에 그저 불편하기만 했던 요새들은,
사실 지금의 나를 성장시키는
낯선 이의 따뜻한 품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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