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에 없던 요새 탈출

by 소편

그 어떠한 준비도 없이 요새를 탈출해버리고 나서,

나는 또 무엇을 하며 이 시간들을 살아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이전에는 탈출할 때마다

적어도 최소한의 계획은 가지고 나왔는데,

이번엔 그마저도 없이 무작정 벗어났다.


사회생활은 원래 하고 싶지 않은 것,

보기 싫은 것, 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하지만 번아웃이 한 번 세게 오고 나니

견디던 힘마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핑계일 수도 있겠지만,

그 안에 있는 동안은

아침에 눈 뜨는 것조차 버거웠고

이대로 살다간 내 인생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탈출하고 나서도

마음이 평온해지진 않았다.

그곳을 벗어나면 자유로울 줄 알았는데,

나는 마치 무중력 속을 떠도는 것 같았다.


나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사람들이 좋다던 운동, 취미, 모임, 책—

다 해봤지만 그때뿐, 불안은 여전했다.


나는 그 불안의 원인을 책과 영상 속에서

힌트처럼 찾아 헤맸고,

마침내 이렇게 깨달았다.


‘아… 내겐 목표와 방향이 없구나.

그저 남들이 사는 대로 따라가고 있었구나.’


내가 꿈꾸던 ‘평범한 삶’은

사실 내게 너무 멀고도 막막한 일이었다.


지금은 안다.

삶에 회의감이 들었던 건

목표 없이 살아가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이라는 걸.


그래서 나는 다소 광범위하지만

지금의 목표를 이렇게 정했다.

‘이 거지 같은 삶에서도

그래도 하나쯤은 나다움을 지켜가는 것.’


그리고 이번엔,

내가 직접 요새를 짓기로 했다.


과연 나는 이번 요새에서 무작정 벗어나지 않고

그 안에서 더 큰 날개를 펼 수 있을까.


…안 되는 게 어딨어.

어떻게든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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