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당신이 우리 부모님께 잘 보여야 하는 자리가 아니야.
바야흐로 예비 시댁에 처음으로 인사를 드리러 가는 길이었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주문한 꽃바구니와 떡케이크를 양손에 바리바리 싸들고 고속버스에 올라탔다. 반려인은 뭐하러 비싸고 무용한 걸 준비했냐며 타박을 주었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나의 꺼지지 않는 불안을 지켜보던 그는 손에 흰 봉투 하나를 쥐여주고는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흰 봉투. 열어보니 정갈하게 프린트된 그의 첫 번째 편지가 적혀있었다. ‘축하해’로 시작하는 다소 파격적인 첫 문장에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런 발칙함은 어느 시인의 머리말 ‘여러분은 운이 좋으십니다.’ 이후 처음이었다. 이토록 자신감과 자기애가 넘치는 사람이라니, 평소라면 조금은 재수 없고 말았을 말들이 그 순간만큼은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막상 도착한 시댁은 그간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정말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어머님이 “너였구나! 드디어 보네.”하고 안아 주셨을 뿐이다. 으레 인사말처럼 궁금한 이름도, 직업도, 나이도 혹은 아들이 왜 좋은지조차 묻지 않으셨다. 그저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었을 뿐이었다. 마치 신입사원 면접을 보러 갔는데, 영문도 모른 채 사장 딸 대우를 받는 기분이었다. 일원으로 받아줄지 말지를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 내정자로서 언제 이 집안에 공식 소속이 될 것인지 소개하는 자리말이다. 가풍이 조금은 특별할 수도 있겠다 짐작은 했지만, 예상치 못한 방향이었다. 대신 시어머니는 당신의 아들에 대한 질문을 던지셨다.
“얘가 네 말은 잘 듣니? 도대체 어떻게 길들였어? 결혼하라고 그렇게 말 해도 안 듣던 앤데.”
입을 뗄 틈도 없이 아버님이 대답하셨다.
“아들을 그렇게 몰라? 얘가 길들여질 사람이야? 그냥 임자 만난거지. 우리는 그저 감사해야 해. 얘 아니었음 이 자식 결혼도 안 했을 거야.”
이 대화를 듣는 순간, 편지에서 느꼈던 모든 이질감이 해소되었다. 허세가 아니라, 이 집안은 아들에 대한 신뢰가 근간이구나. 기실 내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시댁은 아들의 선택이라면 온전히 믿으셨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편지에 묻어난 자신감은 그토록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오늘은 당신이 우리 부모님께 잘 보여야 하는 자리가 아니야.
나의 선택이 옳음을 내가 부모님께 증명하는 자리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지.’
(중략)
‘우리 선택의 옳고 그름이 결정되는 건,
오늘 잘 보이는 당신이 아니라, 예전에 잘 보였던 나의 과거가 될 거야.’
사실 나는 내심 드라마 속 엄격한 부모님의 통과의례를 기대해 왔다.
“뭐라고? 우리 외동딸이 결혼할 남자를 데려온다고? 아무한테나 우리 귀한 딸을 내줄 수 없지!” 따위의 대사를 날리며 이것저것 꼼꼼하게 사윗감을 파악하는 절차 말이다. 반려인을 곤란하게 만드려는 목적보다는 평소 애정표현이 적은 부모님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더 느낄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었다. 덤으로 ‘나도 이렇게 귀한 딸이다.’라고 은근 어필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마법의 순간은 우리 집에서도 똑같이 일어났다. 엄마는 첫 만남에 “문 서방 왔나?”하고 이질감 없는 호칭으로 나를 놀라게 했고, 원체 말수가 적으셨던 아부지는 “남자답게 잘 생겼네.”라고 덕담까지 건네는 낯선 모습을 보이셨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팽팽한 압박면접은 양가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시댁의 가풍이 특이해서 그랬을 거라는 나의 짐작은 보기 좋게 빗나간 것이다. 별 악재 없이 양가 인사가 마무리되어 다행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한 마음이 들어 부모님에게 여쭤봤다. ‘대체 무얼 믿고 바로 오케이 하셨냐’, ‘저 사람이 그렇게 마음에 드셨냐’, ‘왜 궁금한 게 없으시냐’ 같은 말이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에 코 끝이 찡했다.
“네가 오죽 고르고 골랐을까? 널 보고 오케이 한 거지.”
“네가 우리가 하라면 하고 말라면 마는 그런 성격도 아니고, 네가 마음먹었으면 우리 가족 인거지 우리 의견이 뭐가 더 필요해. 설령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어도 우린 말 못 한다. 그냥 너희끼리 잘 살면 돼.”
내가 기대했던 방식으로는 아니어도, 부모님의 사랑을 넘치게 느낄 수 있었다. 왜 결혼하면 효녀, 효자가 된다는 지 알 것만 같았다. 예비 며느리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이 시댁만의 독특한 가풍이라고 치부해 버렸었지만, 그건 우리 집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독립적인 우리 부부를 키우신 양가 부모님들의 공통된 사랑 방식이었던 것이다. 당신의 자식이 얼마나 깐깐한 지, 야무지지만 동시에 고집이 얼마나 센 지 잘 아시기에 그 선택을 전적으로 믿어주는 일,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아무하고나 결혼시킬 수는 없지.’하고 배우자감에 대해 엄격하게 볼 것이라는 나의 1차원적인 생각과 다르게, ‘내 자식이 결혼할 사람이니, 우리 때문에 불화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겠어.’라고 한 차원 높은 수준의 배려를 해 주셨음을 깨달았을 때는 내 자신이 초라할 지경이었다. 단순히 ‘딸 가진 부모’ 입장이라서 할 말도 못 한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우리가 온전히 둘 만의 선택으로 한 가정을 이루도록 ‘허락’의 차원은 패스해 주신 너른 아량에 감탄했다. 어쩐지 슬프면서도 부모님이 다시 보였고 그 어느 때보다 존경스러웠다. 내가 아주 잘 아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그 오만함도 쪼그라들었다. 결혼 이후의 삶을 돌아보면 시댁 어른들의 마음도 아마 이와 같지 않았을까, 감히 추측해 본다. 결혼 이래로 양가 어르신들의 양해 속에 정말 모든 것을 우리의 뜻대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반려인의 편지 첫 구절이 왜 ‘축하해.’인지 이해가 간다. 부모님의 마음을 얻는 것보다 더 까다로운 시험을 통과했다고 보낸, 일종의 축전이었던 셈이다. 이때만 해도 편지 내용처럼 이런 특별한 사람의 최종선택이 나였다는 사실이 새삼 위로가 되고, 자부심까지 느껴졌었다. 그런데 부모님의 말을 듣고 보니 나 역시 한 까탈하는 사람이고, 그 역시 이 어려운 기준을 통과했으니, 얼마나 대단한 인연인지 새삼 실감이 났다. 부모님이 지적하신 정확히 바로 그 지점, 서로의 녹록치 않은 과제를 나란히 통과한 대단한 사람들인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외부의 영향이 없으므로, 오직 우리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면 될 일이다. 반려인 편지의 또다른 구절이 생각난다.
‘우리 선택의 옳고 그름이 결정되는 건,
오늘 잘 보이는 당신이 아니라, 예전에 잘 보였던 나의 과거가 될 거야.’
이제부터 우리 선택의 옳고 그름은, 그의 과거가 아니라 나와 이뤄갈 협업의 결과물로 증명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