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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응갸 Apr 27. 2023

3. 사람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왜곡에 유의하십시오.








반려인을 처음 만난 곳은 요리동호회다. 매서운 역병이 유행하기 직전, 각종 앱의 지원사격으로 한창 동호회붐이 일었을 때였다. 많고 많은 카테고리 중에 요리를 고른 이유는 ‘번거로움’ 때문이었다. 



사전에 참여 신청을 해야 하고, 재료비를 포함한 적지 않은 참가비와 알파(뒷풀이) 비용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요리’라는 참으로 번거로운 작업을 오늘 처음 보는 이들과 팀이 되어 진행해야 한다. 2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서로 의견을 나누고, 역할을 분담하고, 여유가 생기는 사람은 돕고, 나서서 배려하고, 고생고생 끝에 완성한 작업물을 함께 나눠 먹으면서 오늘의 소회를 곱씹어본다. 장담컨대 살면서 해 본 팀플 중에 가장 아름다운 협업이었다. 조 발표를 처음 만든 작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애초 발상은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누구 하나 발표 때 이름을 지우고 싶을 만큼 얌체이거나, 소극적인 사람이 없다니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술자리가 시작된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던 팀플 대신 돈을 지불하고, 소중한 시간을 낸 만큼 사람들은 참으로 열심이었다. 이 어마어마한 진입 장벽 덕분에 이성에 대한 목적이 우선한 사람은 자연스레 필터링 되기 마련이었다.



나는 콕 집어 ‘이성’ 보다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나름 머리를 굴려 동호회 목적에 충실하게 운영될 것 같으면서 내 취향과도 맞는 ‘요리동호회’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옳았다. 적어도 그곳에서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건실했다. 그 덕에 처음 동호회에 가입할 때만 해도 깊게 생각해 본 적 없던 ‘요리’라는 행위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몇 번의 술자리를 함께 해도 볼 수 없는 모습이, 두 시간 남짓한 찰나에 뚝 뚝 흘러나왔다. 왜 회사 오뚜기의 심층 면접에 ‘요리’ 전형이 포함되어 있는지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요리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평소 자신을 포장하던 방어기제가 헐거워져 다들 어딘지 모자란 구석 하나쯤은 내보이는, 인간미가 넘치는 현장이었다. 양파 따위가 깍둑 썰리든 채로 썰리든 아무렴, 즐거웠다. 완성된 음식이 맛이 없을수록 더 웃겼다. 기실 완성된 요리의 완성도 보다는, 타인과 함께 목표를 이뤄가는 순수한 성취감만이 가득한 시간이었다. 이곳의 목적은 면접도, 과제도, 강의도 아니었으므로 즐기지 아니할 이유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게다가 생각 외로 환상의 남녀비율을 자랑했다. 이렇게 멋진 사람들을 모아두었으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였다.








반려인은 동호회에서 흔히들 ‘고인물’이라 부르는 시니어 그룹이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만남에 대한 그의 기억은 나의 것보다 앞선다. 갓 들어와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에 정신이 팔린 통에 다른 조의 팀원까지 일일이 기억할 여유가 없었던 터다. 반면 터줏대감인 그는 누구누구가 이번 주에 새로 왔으며, 몇 번이나 같은 수업을 들었는지까지도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아마도 그의 면접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즈음의 나는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이 컸다. 낯을 가린다거나 내향적인 편이 아닌데도 묘하게 사람들 사이에서 고립된 느낌이었다. 오히려 가까운 사람들이 나의 침잠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그래서 아예 낯선 것들만 가득한 세계에 나를 던져 넣기로 했던 것이다. 

하지만 큰마음 먹고 들어온 동호회 사람들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과 관계를 쌓아 올리는 것이 어려웠다. 팀원이 매주 바뀌는 통에, 실컷 친해져도 다음 주에 그들을 또 만나게 되리란 보장이 없었다. 고정적으로 출석도장을 찍는 시니어 그룹과 친해져야만 관계의 누적이 이루어질 것 같은데, 이미 그들 간의 결속력이 너무 강해 보였다. 이대로 포기하기엔 30대가 되어 처음 내 본 용기가 너무 아까웠다. 고민고민 끝에 평소 카톡 알람도 모두 꺼두는 내가 단체 채팅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시니어 모임에 나가는데까지는 성공했지만 말 한 마디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다 들어온 날도 부지기수였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이미 진한 추억을 나눈 듯한, 2학년에 들어온 나홀로 편입생의 그 마음이었다. 그 중 나에게 있어 최고의 용기는,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하다 1박 2일 MT에 따라 나선 그날이었다. 친분 있는 사람은 고작 1~2명, 그나마도 인사나 몇 번 나눈 사이였기에 여간 걱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날의 유별난 용기 덕분에 미래의 반려인을 만나게 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평소답지 않게 누군가에게 빌려 오기라도 한 듯한 이 ‘어마어마한 용기’는 결과적으로 나의 인생을 바꾼 체크메이트가 되었다.








요리동호회 MT의 풍경은 생소하다. 20대 초반에 갔던 그 많은 MT 중 가장 풍요롭고 수평적이었다. 너나할 것 없이 안주거리가 떨어지면 조용히 사라져 완성된 요리를 들고 나타났다. 요리실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알아서 뒷정리를 도맡았다. 젖과 꿀이 흐르는 현장이었으니, 나만 잘 적응하면 될 일이었다.



나에게만 초면이었던 그날,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반려인은 이야기를 참 정성껏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사람을 알아가는 스타일인 나는 ‘아, 이 사람이랑 앞으로 얘기를 좀 더 해 보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다음날 바로 데이트 신청을 했다. 그것도 홍천까지 가는 주말 드라이브. 일정이 안 맞아 두 번의 평일 약속을 거절했던 터라 더는 거절할 수 없어 ‘홍천행’을 동의하긴 했지만, 걱정이 앞섰다. 거의 초면인 이 사람과 홍천까지 오가는 숨 막히는 차 안에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하지만 애먼 걱정이 무색하게 대화가 참 잘 통했다. 나는 어색한 사이면 대화를 이끌어내려고 상대에게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인데, 그는 한 가지 주제로도 곧잘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또 ‘아, 이 사람을 좀 더 알아보고 싶다.’라고 생각했고, 그는 나에게 오늘부로 만나는 사이가 되면 어떻겠냐고 말했다. 



직관적으로 사람이 위기를 감지하는 순간이 있다는데, 그게 이 순간이었던 것 같다. 단 두 번의 만남으로 느낀 바, 아무리 예쁘게 거절해도 지금 순간을 놓치면 다시는 이 사람을 보기 힘들 것 같았다. 분명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나에겐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 거리를 두면 영원히 그 기회조차 오지 않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아주 불편한 마음으로 그러마 대답했다. 처음으로 ‘판단 후 선택’이 아니라, ‘선택 후 판단’이라는 모험을 걸어 보기로 했다. 그만큼 욕심 나는 사람이었다.



만난지 일주일, 첫 번째 데이트만의 일이었다.








반려인 사전에 ‘썸’ 같은 ‘애매한 사이’는 정의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아주 강력하게 주장했다. ‘잘 보이기 위해 포장한 사람을 알아가는 게 무슨 소용이 있냐’, ‘만나기로 결정한 다음에 나오는 게 진짜 그 사람의 본성이다’, 외치며 ‘썸 무용론’을 설파했다. 그럴때면 ‘만물경험설’을 믿는 나는 조용히 돌아서서 입을 삐죽였다. 

스파크와 설렘이라는 몽글한 감정이 차마 생길 틈도 없이 시작된 연애 초반은 매일이 낯설었다. 남자친구라고 손은 잡고 있는데, 이 사람 속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제 막 맞춰가는 과정이라쳐도, 특이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유형의 사람이었고, 생각이 어디로 튈지 몰라 매일 지루할 틈이 없었다. 이 새로움이 좋은 쪽인지, 그 반대일지 더 만나봐야 알 일이었다.



연인이 되었다고 해서 마음을 놓을 상황은 아니었다. 어쩐지 오디션 결선에 참여한 듯한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둘이 함께할 미래나, 결혼에 대한 생각을 가볍게 물어보는 상황이 생겨도 그는 절대 대답하는 법이 없었다. 대신 자꾸 나의 모든 행동에서 ‘숨은 의도’를 해석하려 애썼다. 마음을 잘 숨기지 못하는 나는 또 매번 진심을 들키곤 했다. 늘 심사받는 기분 탓에 긴장이 되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산점을 쌓고 있었던 모양이다. 딱 1주년이 되는 날, 아무도 없는 제주도 바닷가에서 느닷없이 반지를 받았다. 믿을 수 없어서 지금 이게 프로포즈가 맞냐고 열 번은 되물었던 것 같다. 그 즈음 그가 ‘비혼주의자’이거나, 내가 결혼 상대로 성에 차지 않는 건 아닌지까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던 나는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프로포즈를 받고도 이런 감정이 든 사람이 또 있을까? 그와 나의 시차는 도대체 얼마나 되는 걸까? 

사계절을 지내보아야 나를 제대로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결혼에 대한 생각을 가볍게 밝히고 싶지는 않았다고 말하는 그가 얄밉기도, 무섭기도 했다. 이 미스터리한 남자의 ‘합격 반지’를 받긴 받았는데 과연 그의 면접은 끝이 났을까, 아니면 최최최종 면접이 진행 중인 걸까.



이렇게 배우만 모르는 장기 오디션 끝, 나는 그의 인생에 여주인공으로 전격 캐스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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