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기 다른 스타일의 대표이사님들 이야기
광고와 마케팅 쪽에 일하다 보니 회사를 옮겨다닌 경험도 비슷한 경력의 다른 업종보다 많고, 거래처도 워낙 많다 보니 다양한 사장님들을 만나볼 기회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세상에 희한한 사람 정말 많고, 일하는 방식도 다들 다르더군요. 실명이나 회사명을 거론할 수는 없겠지만 제가 만나본 인상 깊은(?) 사장님들의 유형을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혁신의 아이콘이었던 스티브 잡스가 이미 고인이 된지도 상당히 오래되었지만, 아직까지도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람이 스티브 잡스인 것 같습니다. 제가 만나본 대표님들 중에서도 스티브 잡스형 대표님이 가장 많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스티브 잡스형 대표님들은 본인이 스티브 잡스라고 생각하시지만 대부분 고인과 닮은데라고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밖에 없습니다.
스티브 잡스형 대표님들은 보통 대화가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 주에 만난 사람들에게 들어보고 알아온 지식들을 가지고 업무를 지시합니다.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보다 보통 어젯밤에 만난 다른 업계 친구들, 자기보다 돈 많은 선배들의 이야기를 더 믿습니다.
어떤 스티브 잡스형 대표님은 쿠팡맨 처럼 배송 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고만 하고 그들이 소프트뱅크에서 1조를 펀딩 받은 것은 잘 모르시는 것 같더군요.
빌 게이츠는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IT재벌이지만 제가 만나본 빌 게이츠 형 대표님들은 돈이 별로 없습니다. 대신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처럼 제품 개선보다 OEM 세일즈에 집중합니다.
이런 유형의 대표님들은 마치 다단계와 유사해 보일 수 있지만, 영업에 목숨을 거는 타입입니다. 싸게 팔더라도 무조건 많은 업체들에 영업하는 것이 회사의 최우선 과제입니다. 그러다 보니 영업파트가 회사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당연히 광고/홍보 비용은 없을뿐더러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회사 책상이나 인테리어 등 집기에 투자하는 비용도 제로이지요. Microsoft 가 많은 마케팅 비용을 사용하고 빌 게이트가 사회공헌 활동과 기부를 상당히 하는 것은 절대 모르시지요.
제프 베조스형 대표님들은 대부분 제프 베조스가 누군지 잘 모릅니다. 대신 제프 베조스가 아마존을 창업할 때 냅킨에 그렸던 이 개념도처럼 무언가를 쓰기를 좋아합니다.
주로 빈종이에 도형 그리며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시고 회의실에서는 무조건 보드에 글씨를 날려쓰셔야합니다. 무슨 글자인지도 못알아볼 ㅠ 이메일은 대부분 안 보십니다. 보고할 일은 출력해서 종이 위에서 보셔야 합니다.
나이 든 대표님이 아닌가 하시겠지만 제가 아는 제프 베조스형 대표님은 31세이셨습니다.
마크 주커버그형 대표님 요즘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 벤처의 대표님들이고 몇몇 회사는 150명 이상되는 어느 정도 성공한 회사 대표님이십니다. 이 분들은 대부분 20대 중반에 일을 시작하여 사회경력이 없으십니다.
이분들은 아주 큰 열정으로 일하시며 회사의 모든 의사결정을 도맡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사회 경력이 없다 보니 의견 마찰이 있을 때 갑자기 대표가 아니라 애가 됩니다. 그냥 학교 다닐때 봤던 동생처럼 삐지기도 합니다. 마크 주커버그형 대표님이 가장 취약한 부분이 HR인데, 자꾸 인사권을 내두르기도 합니다.
본인보다 나이 많은 직원들이나 임원들을 뽑지만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나이가 어린 인턴이나 주니어급 직원들과 어울리고, 자신보다 나이 많은 직원들에게는 상하관계가 확실합니다.
앨런 머스크형 대표님은 지인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넓은 인맥을 토대로 사업을 확장해나가며, 회사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습니다. 당연히 대표님 포함 지인들의 차들은 어마어마하게 비싼 차들입니다. 유학파들이 많으며 나이에 비해 상당히 젊어 보이는 남자 대표님입니다.
이런 유형의 대표님들이 앨런 머스크와 가장 닮은 점은 복잡한 여자관계입니다. 회사에 이상한 복장을 한 여성들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고 파트너가 자주 바뀝니다.
이런 대표님의 경우에는 재무쪽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회사 돈을 개인의 비용으로 쓰던지 회사 내에는 없는 회사명의의 차들이 있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오래된 제조업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대표님 유형이 바로 김정일형 대표님입니다. 우리가 모두 다 아는 브랜드이긴 하나, 정직원이 500명 미만의 회사의 대표님입니다. 오랜 기간 피땀 흘려 일궈낸 회사이기 때문에 이런 대표님은 보통 목소리가 크고 화를 엄청나게 내십니다. 전형적인 독재자 스타일이고 직원들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숨는 유형입니다.
문제는 김정일형보다 김정은형 대표님입니다. 어느 날 유학 갔다 온 2세가 경영권 승계를 위해 출근하기 시작합니다. 당연히 필드의 지식은 없고, 살이 뒤룩뒤룩 찐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이 아는 분야의 것을 회사와 연결하려 합니다. 예를 들자면 양말 공장에 게임을 만들어 게임 마케팅을 하자는 식입니다.
문제는 김정은형 대표님들이 오히려 아버지대 보다 더욱더 권위적입니다. 자신의 뜻에 반하면 바로 숙청작업을 조용히 시작합니다. 이 분들은 희한하게 20가지 개떡 같은 짓을 하다가 한 두 가지씩 성공사례를 만듭니다. 대부분 마케팅 부서에서 먼저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전 제가 주니어 때에는 이명박형 대표님이 가장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명박처럼 정치하는 대표님이 아니라 ‘우린 왜 이런 거 못 만드냐?’를 주로 이야기하는 분들입니다. 닌텐도를 보고 한국형을 만들라고 '명텐도'라는 비아냥을 받았던 그 사건 말입니다.
이런 유형의 분들은 인프라 구축에 인색하시고 주로 결과론자이십니다. '왜 우린 이런 거 못 만드냐?'를 주로 시전 하시다가 가끔 ‘그냥 베껴’라고 지시하십니다. 그러면서 "삼성이 왜 지금의 삼성이 되었는지 아니냐? 소니꺼 베끼다가 삼성이 된 거다!"라고 붙이십니다.
과정보다 결과가 훨씬 중요하신 분들이라 결과가 좋지 않으면 모든 책임을 강력하게 물으십니다. 하지만 의외로 최익현 씨 같은 분들에게 약하십니다. 결과보다 아부에 더 약합니다.
기억나는 좋은 대표님들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대표라는 자리가 오너든 월급쟁이 사장이든 인정받기보다는 욕먹는 자리인 것 같습니다. 저도 와이프가 사업할 때 함께 엄청나게 압박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 두 번 다시 사업 같은 건 꿈도 꾸고 싶지 않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아무리 이상한 대표님이라고 하더라도 알고 보면 대부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계십니다. 대표님들에게 가끔 ‘힘드시죠? 힘내세요!’ 하고 박카스 한 번 건네 보시는 건 어떨까요? 물론 대가를 기대하고 주진 마세요. 주는 행복이 더 좋은 거잖아요 :)